흔들렸다.

힘이 빠진 왼손은 카메라를 제대로 받치지 못했다.

셔터를 누르는 오른손 검지엔 지나치게 강한 힘이 실려 있었다. 촬영 후 뷰파인더에 비친 피사체의 모습은 찍기 전과 사뭇 달랐다.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누른 채 하드디스크에 쌓아둔 사진들을 살펴본다.

모든 사진의 입자는 한쪽으로 쏠려 있었다.

다른 사진사들이 찍은 수천 장, 수만 장의 작품을 보며 감탄했다. 하지만 왜 그들에 뒤지지 않은 장비를 갖고도 불만족스러운 사진만 남발하는지 의문을 품지 않았을까? 왜 부족한 실력을 되돌아보지 못하고 일주일 단위로 똑딱거리는 편집국 일정에 파묻혀 있었을까?

부기자였던 지난 학기, ‘그림이 나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 사진기자들을 부러워했다. 그들을 볼 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했고, 그들이 쉬는 동안 한 발짝이라도 뛰어다니며 적합한 앵글을 찾아 ‘그림’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정기자의 매너리즘은 당연한 것이라고 자위하며 한 학기를 보낸 지금, 기자로서 내 역량은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몸서리친다.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끊임없이 경계하지 않고, 슬그머니 찾아오는 정체(停滯)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나마 딛고 선 기반까지 산산조각 무너지는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이다. 학생기자가 부딪히는 매너리즘은 기자로서의 역량이 단단히 뿌리내렸을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엉성하게 얽힌 실력이 자리매김하기도 전에 찾아오는 매너리즘, 허울뿐인 ‘가짜 매너리즘’이다.

/사진부 이용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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