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날 멕시코 원주민으로 구성된 싸빠띠스따민족해방군은 NAFTA에 반대한다며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1999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막기 위해 5만명이 집결했고, 시위대는 회의장을 봉쇄하고 각료회의를 무산시켰다.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역시 WTO 각료회의가 개최될 때 한국 농민 이경해 열사는 WTO 회의장 밖 바리케이트에 올라가 “WTO는 농민을 죽인다”고 외친 후 자결했다. 남미 여러 나라의 민중들은 대륙 전역에 걸쳐 미주자유무역지대(FTAA)에 반대하기 위한 국민투표와 광범위한 시위를 진행해왔고, 한국의 진보진영도 당장 5월 WTO 서비스협상을 규탄하기 위해, 11월 부산에서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반대하기 위해, 12월로 예정된 또 한 차례의 WTO 각료회의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정부는 “세계화는 대세”이자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데, 왜 전세계 노동자와 농민들, 여성, 환경운동가와 학생들은 그렇게도 WTO와 자유무역협정에 거세게 저항을 하는가?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WTO 내지는 각종 자유무역협정들이 ‘무역’, 즉 경제적 수출과 수입을 관장하기 위한 기구협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역’을 넘어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와 문화를 초국적 자본의 이해에 복무하게끔 강제하는 기구이자 협정이며, 실질적인 사법권까지 행사하면서 초국적 자본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초국적 ‘헌법’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곧 전세계 민중들에 대한 차별과 빈곤 확대, 착취와 제반 권리의 박탈을 의미한다. IMF와 마찬가지로 WTO와 자유무역협정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세계에 확산하기 위한 핵심 기제이다.
이런 신자유주의 무역체제는 의료·교육·문화·물·에너지 등 당연히 인권으로서 보호되어야 할 공공재를 이윤놀음에 내맡긴다. 결국 이런 공공서비스를 ‘공공’서비스가 아니라 소수 부유한 자만 누릴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이런 무역협정인 것이다. 그 뿐 아니다. WTO와 자유무역협정의 지적재산권 보호 조항들은 의약품과 정보에 민중의 접근을 봉쇄한다. 실제로 아프리카와 남미의 수많은 에이즈환자가 간단한 약조차 먹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의 백혈병 환자들 역시 저렴한 약을 구할 수 없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농업을 말살시켜 식량주권을 박탈해간다. 식량은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국가가 식량의 생산과 분배에 개입해 통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WTO체제 하에서는이런 국가의 역할을 무력화시키고 기업들이 국민이 무엇을 얼마나 먹을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한국 정부는 ‘선진통상국가 방안’을 내놓았는데, 각종 형태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수십개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WTO 협상에 대한 전폭적 지지를 내세우고 있다. 1997년 경제위기에 대한 ‘극복’ 방안으로서 추진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공공서비스는 사적 소유로 전락하고, 농민들이 절규하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음에도, 빈부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부가 말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대세가 아니다. 오히려 이에 대한 저항이야말로 대세이며 세계적이다. 그리고 세계화는 우리의 생존방안도 대안도 아니다. ‘자본의 세계화’에 복무하는 WTO와 자유무역협정을 무력화시킴으로써 인간의 보편적 권리와 평등에 기반한 세계화를 이룩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생존방안이자 대안이다.

/전소희 wto 반대국민행동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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