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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신소설은 토소자의 <엿장사>토소자,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다
  • 최종혁 기자
  • 승인 2005.05.23 00:00
  • 호수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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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의 누」. 영화 제목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최소의 신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인직의 소설이다. 하지만 친일작가와 친일적인 내용을 담은 「혈의 누」는 우리나라 근대 소설의 뿌리가 부끄러운 역사 속에 내리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국문학을 하는 학자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항상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초의 신소설이 「혈의 누」가 아니라 「엿장사」라는 학설을 내세워 그 연대를 앞당기며 신소설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저서가 지난 20일 출간됐으니, 바로 설성경 교수(문과대·국문학)의 『신소설 연구』다.

최초의 신소설에 대한 새로운 학설 제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5년 서울대 국문과 권영민 교수는 최초의 신소설이 「일념홍」이라는 학설을 내세웠다. 권교수는 「일념홍」이 영웅소설의 서사구조를 변형시킨 작품이며, 「혈의 누」보다 6개월 앞서 발표됐고 ‘일학산인’이라는 작가가 쓴 최초의 작품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한국 최초의 신소설 「엿장사」

한편 「엿장사」는 1898년 「한성신보」에 연재됐던 소설로 토소자라는 필명을 사용한 작가가 쓴 작품이다. 「한성신보」는 일제에 의해 창간된 신문으로 일본의 외무성 기관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한성신보」의 사원들도 그 사건에 여러명 연루돼 있었기에 독자들이 크게 감소, 「한성신보」 운영진은 그 돌파구로 소설란을 신설해 독자들을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면서 「엿장사」도 「한성신보」에 연재된 것이다. 이처럼 친일지에 게재된 작품이었기에 「엿장사」는 그동안 학자들의 연구에서 소외시 됐다.

설교수에 의하면 「엿장사」는 기존의 영웅소설이나 판소리계 소설과는 달리 사실적 표현과 일상어의 감각적인 맛, 그리고 극적인 반전으로 새로운 소설의 국면을 보여주고 있다. 설교수는 “「엿장사」는 엿을 파는 미천한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주인공이 펼치는 삶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김생원(엿장사)은 엿을 팔러 다니다가 신서방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신서방의 권유로 만인계(萬人契,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계를 부어 제비뽑기를 해서 그 순서에 따라 돈을 타게 되는 복권의 한 종류)에 들어 첫번째로 돈을 타게 됐지만 돈을 불려 준다던 신서방에게 사기를 당하고 만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엿장사의 신세가 된 김생원은 열심히 일하고 밤 늦게 귀가하다가 강도를 만나 엿 판 돈을 내 놓으라고 위협당한다. 이러한 내용을 줄거리로 하는 이 소설에 대해 설교수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어리석은 인물, 그리고 사기꾼과 강도들, 이들 속에서 자신들의 보금자리마저 위협받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실상으로 나타남을 비판하고 있다”며 그 주제를 설명한다.

“「엿장사」는 개화와 근대화란 명목으로 주변 국가들을 정치적으로 침략하는 일본을 풍자한다”는 설교수의 말처럼 겉으로는 사회의 문제를 내세우면서도 내면적 주제를 통해 날카로운 시각으로 일본의 야욕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엿장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사회적 신분과 성격의 면에서 새로운 형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엿장사와 신서방의 관계는 선과 악이라는 고소설적인 인물 대립이 아니라 근대 사회에 적응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조성됐다. 엿장사 역시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힌 인물이고 신서방도 마찬가지로 부도덕한 인물이기에 두 사람 모두 혼탁한 근대 사회의 부정적 인물들이다.

「엿장사」의 소설사적 의의

이처럼 다양한 면에서 새로운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신소설의 효시 「엿장사」는 우리 소설사에서 어떠 의의를 지니고 있을까? 1898년에 창작된 「엿장사」는 1906년 「혈의 누」, 「일념홍」 효시설에 비하여 8년 이상 앞서고 있다. 이에 설교수는 “19세기 말 신소설 성립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확보하게 된다”며 시기적인 의의를 전했다. “무엇보다도 강조되는 것은 「한성신보」라는 친일지 속에서 애국적이고 주체적인 반일 정신이 담긴 작품을 발표했다”는 설교수의 말처럼 「엿장사」의 작가 토소자는 친일지 속에서 교묘하게 일제를 풍자해낸 뛰어난 역량을 갖춘 작가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친일 혐의를 받아온 「혈의 누」를 최초의 신소설이라고 암묵적으로 동의해왔다. 당대 많은 작가들이 몰주체적으로 일본의 식민주의적 담론에 따라 갔을지는 몰라도 설교수가 만난 토소자는 그런 사람들과는 달리 그의 필명처럼 사회에 웃음을 내 던지는 풍자를 통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국학 발전에 힘써온 연세의 터전에서 나온 새로운 학설이 정설로 자리잡아 「엿장사」가 한국 신소설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길 바란다.

최종혁 기자  bokusip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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