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 3인 3색

재학기간중 휴학을 경험해보지 않은 학생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휴학은 이제 대학생활의 일부분으로 보편화됐다. 종합서비스센터에 따르면 입대휴학을 제외하고도 매학기 약 2천5백여명의 학생들이 휴학을 신청하고 있다. 휴학을 하는 이유는 군입대, 공부, 여행 등 제각기 다르지만, 막연하게 휴학을 생각하고 있는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이 휴학기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해한다. 연세춘추는 휴학생과 복학생 3인을 만나 각각의 휴학동기와 경험을 들어봤다.

“휴학하면서 마음을 다잡았어요”

지난 2004년 2학기 복학한 서재협군(문정·03)은 지난 2003년 1학년 1학기만을 마치고 1년간 휴학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막상 입학하고 보니 제가 생각하던 대학생활과는 거리가 멀더군요. 고등학교 시절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암기식 수업에 환멸을 느꼈습니다.”

휴학기간 동안 서군은 다채로운 경험을 했다. 뉴질랜드와 유럽 10개국을 친구들과 함께 여행한 것이 그 중 하나다. 뉴질랜드의 남섬을 한바퀴 돌면서 스카이다이빙, 번지점프를 즐겼다는 서군. 여행경비는 수족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련했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정말 자연 경관이 장대하고 깨끗했어요. 한국과는 달리 시야를 가로막는 고층건물도 별로 없었고요.”

유럽여행경비는 아들이 하는 일이라면 별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서 충당했다. 서군은 “수많은 국가와 도시들을 짧은 시간내에 둘러보느라 주마간산식의 여행이 된 것 같다”고 아쉬워한다. 그러나 밤마다 친구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눈 것이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고.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국에서 외국어 학원 등을 다니며 지친 심신을 재충전한 서군은 “휴학기간 동안의 경험이 마음을 다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이제 복학한 그는 전공을 배정받고 학업에 매진하고 있다.

 “꿈이 있기에 지금의 어려움도 감수할 수 있어요”

빌링슬리관 3층에 위치한 우리대학교 외무고시 준비반 정외과 화백실(아래 화백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공부하는 박성훈군(정외·97휴학)의 모습이 보인다. “이번에 미역국을 먹었어요. 이번 학기는 휴학하고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다시 한번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박군은 “학업과 고시공부는 병행하기 힘들다”며 휴학의 동기를 설명한다. 수강신청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고시에 필요한 과목만 수강하는 것도 여의치 않으며 특히 레포트나 조모임이 몰려있는 수업의 경우 공부에 큰 지장을 준다는 것이다. 박군의 이러한 설명은 휴학생이 가장 많은 집단 중의 하나가 왜 고시생인지 알 수 있게 한다.

휴학후 박군의 일상은 지극히 단조롭다. “아침 9시에 화백실에 와서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밤 10시까지 계속 공부를 합니다.” 박군이 현재 거주하는 곳도 무악4학사라서 휴학 후에도 계속 학교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계속 공부만 하는 것이 지겹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호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제 일상에 공부 외의 다른 것은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휴학도 그 꿈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고요.” 그런 박군도 먼저 합격한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럴때면 가끔씩 화백실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기분전환을 한다고.

박군은 마지막으로 “휴학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지는 않는다”며 “결국은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충실히 자기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휴학을 꿈꾸는 고시생들에게 조언했다.

“저는 제가 치열하게 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김안나양(경영·03휴학)은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모 마케팅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김양이 이 회사에서 맡고 있는 업무는 기획서 작성과 예산회계 등이다. 애초 다음학기에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미리 휴학했다는 김양은 학업의 부담에서 벗어나 한학기 정도 쉴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휴학 전에도 각종 마케팅 공모전 응시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그녀에게 집에서 쉬는 것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나이가 어려서 회사에서 받아줄 지 의문이었어요. 다행히 다양한 경력이 채용에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김양은 “휴학기간이 단지 쉬는 시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일하면서 어려운 점이 없지만은 않다. 어린 나이 때문에 외부손님들이 당황해하는 일이 종종 있고 미숙한 컴퓨터 프로그램 사용 등으로 인해 상사로부터 가끔 질책을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9일에는 아카라카 축제에 간다고 회사를 조퇴하니까 고려대 출신 팀장님 심기가 무척 불편해 보이던걸요”라며 배시시 웃는 김양의 장난기 어린 얼굴에서 신세대 특유의 낙천성이 물씬 느껴졌다.

휴학기간 동안 회사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에 두번 퇴근후 시간을 이용해 과외도 한다고 귀띔하는 김양의 나이는 고작 만 20살, 이 많은 일들을 해내기에는 너무 어리다. 그럼에도 김양은 결코 만족해하지 않는 듯 하다. “휴학기간 중 많은 경험을 하면서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김양은 인턴계약이 끝나는 오는 6월경 해외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휴학, 자기 하기 나름이에요’

학점의 압박으로 인해 빡빡한 학사일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일탈의 기회인 휴학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 시간을 정말로 알차게 보내는 왕도는 뚜렷히 없다. 다만 성공적인 휴학기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 동안 또다른 일상에 얽매이기보다는 그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일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세사람과의 만남에서 얻은 왕도 아닌 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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