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얼빈은 북경의 이웃?

중국으로 봉사활동 지원서를 제출했을 때만 해도 나는 하얼빈이 북경과 가깝다고 알고 있었을 정도로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무지했었다. 하얼빈은 동북 지방이고, 북경은 말 그대로 북쪽의 수도이니 이웃해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왕 내친 걸음에 북경까지 가보면 어떨까’ 하고 일장춘몽에 빠져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염불보다 잿밥’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봉사활동에 대한 열정보다는 이국의 문물을 체험하려는 욕심이 앞서 있었다.

하얼빈이라고 하면 한국인 대부분이 안중근 의사와 빙등제 정도의 단편적인 정보를 떠올릴 것이고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정치의 중심지인 수도 베이징과 경제의 수도라고 불리워지는 상하이를 제외하고, 중국의 도시 대부분이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는 인식 또한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네온사인이 무성한 서울의 빌딩숲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예상 밖으로 화려한 건물들과 유럽식 거리풍경, 아시아에서 가장 높다는 용탑은 그러한 인식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2. 조선족 친구들

지난 2004년 7월 19일 중국 하얼빈 시에 도착한 날 저녁 조선족 친구인 광휘와 국화를 처음 만났다. 낯선 땅에서 겉모습이 같고 국어를 사용하는 친구들을 만났던 터라 반가움에 우리들은 약간의 실수를 했었나 보다. 호기심에 물어본 말들이 친구들 입장에서는 중국의 생활수준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들렸던 것이고, 그래서 우리들은 처음에는 서로 거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21일부터 시작된 홍신촌과 월성촌 농촌 봉사활동을 거치면서 우리들은 점점 가까워졌다. 마을도로, 배수로, 가로수 등 일손이 많이 필요한 마을의 숙원사업을 함께 해결했고, 풍물과 레크리에이션 문화교류 프로그램을 함께 마련하면서 서로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갔다. 여러모로 돌봐주시고, 귀한 말씀 들려주시고, 마지막 날 다같이 신명나게 어울려 주신 홍신촌과 월성촌 주민 여러분들과도 역시 처음에 느낀 서먹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없었다. 같은 말과 글, 문화를 공유하는 한민족이기에 국적을 초월해 인간적인 교류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민족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는 동북농업대학과 쌍태직업전문학교를 비롯, 한족들과의 문화교류를 통해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족들과의 문화교류에서 언어와 음식 등 이국적인 문화를 경험할 수는 있었지만 조선족들과의 교류에서 느꼈던 따뜻함은 느낄 수 없었다. 격의 없이 대하고 아낌없이 도와주던 정(情)은, 우리들이 한민족이기에 서로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3. 마지막!

스피노자는 ‘진실은 시간과 인내가 말해준다’라고 확신하였다. 3주간의 ‘시간’과, 봉사활동을 통한 ‘인내’는 이번 중국 봉사활동이 매우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라는 ‘진실’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건국대학교 한상도 교수님, 국제농업개발원 이병화 원장님과 장수영 과장님, 그리고 중국 팀에 선발해 주신 대학사회봉사협의회와 연세대학교에 감사드린다.

/문은정(영문·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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