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은 기업의 맞춤형 인재를 양산하는 팩토리가 아니다"

▲지난 주 초, 언론에서는 대대적으로 대학 때리기에 나섰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발표한 ‘대졸신입사원 재교육 현황’이 그 화근이었다. 발표에 따르면 대기업의 경우 대졸신입사원 재교육에 드는 비용이 1인당 1억원을 넘었고, 실무에 투입하기까지 걸리는 재교육기간도 평균 2년 6개월에 달했다. 언론들은 기업의 욕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대학교육의 현실을 꼬집으며, 실무형 대학교육을 촉구하는 관계자의 멘트도 잊지 않고 넣어줬다.

▲‘도대체 학교에서 뭘 가르쳤냐?’는 식의 대학교육 비판은 실상 어제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동안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이 갖춘 지식과 기술이 기업이 필요한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에 언론에서도 ‘채용하고 싶은 인재를 키워라’며 짝짜꿍을 맞춰줬고, 급기야 교육부총리까지 나서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길러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얼마전 이건희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로 빚어진 고려대 사태에서도 확인했듯, 오늘날 한국에서 기업이 갖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하지만 이렇게 실무교육 서비스와 맞춤형 인재 제공을 요구하며 대학교육마저 압박하는 모습은 지나친 오만이다. 마치 대학을 기능인력 양성소의 하나로 생각하는 기업의 팩토리(Factory)적 시각이 그대로 적용되는 듯 하다. 기형적으로 높은 한국의 대학진학률과 고학력화로 인해 실무형 인력을 전문대학이 아닌 일반대학에서 찾아야 하는 기업의 사정도 절박하지만, 그렇다고 문제의 근본은 무시한 채 대학의 교육과정을 기업의 입맛에 편성해가며 개선해가겠다는 발상은 어처구니가 없다. 이러한 사회적 풍토 속에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기초과학과 인문학 분야는 그야말로 박살이 나지 않았던가.

▲대학을 거치는 동안은 바로 잠재적 가능성(Potential)을 키우는 시기이다. 응용학문을 다루는 공과대에서조차 전공과목을 가르칠 때 ‘이 내용이 실제로 필드에서 쓰일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학의 교육이 기초적인 부분, 개념 확립과 같은 원리원칙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내용들이 성장의 근간이 되고 뼈대가 되기 때문이다. 당장은 쓸모없을지라도, 나아가 연구를 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시엔 그 핵심으로 작용한다. 학문적 토대를 통해 사고의 영역을 확장하고 생각의 깊이를 두텁게 하는 것은 대학시절 동안의 필수과정이다. 그 뒤에 기업에 가서 실무교육을 받든, 대학원에서 연구를 지속하든 어떠한 선택에 있어서도 발전의 든든한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최근 불거지는 ‘사오정’, ‘오륙도’ 문제만을 보더라도 대학과 기업 사이의 책임구분은 명확해진다. 사십대가 되면 정년퇴임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기업을 벗어나면 효력을 상실하는 기업교육까지 대학이 짊어질 이유는 없다. 기업이 원하는 인력창출은 산학협력을 통해 직접 투자해서 얻어갈 일이지 대학교육의 커리큘럼에 칼날을 들이대며 요구할 사항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아직 공부를 하는 시기인 대학생 시절은 그릇을 키우는 단계이다. 큰 그릇을 만들고 나면 나중엔 무엇이든 집어넣을 수 있다. 반면 완성되지 않은 그릇에 벌써부터 이것저것 넣다보면 이미 효용가치는 거기서 끝이다. 대기만성이라하지 않았던가.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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