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해열제에서는 마녀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이런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오는 따분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대를 위한 가지각색의 해열제를 준비해 두고 있는 곳이 있다. 반복되는 신촌의 풍경 속에서 너무도 단조로운 철문 하나, 하지만 그 문을 열면 우리의 열을 식혀줄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그 곳, 분장까페 ‘해열제’가 초대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동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마법사들과 온 몸을 소름 돋게 했던 스크림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 곳. 일상의 기억을 날려버릴 강렬한 비트의 음악과 우리를 새롭게 변신시켜 줄 온갖 분장도구들이 기다리는 그 곳.

 

1998년에 문을 연 이곳은, 직장인으로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외국의 파티문화를 컨셉으로 한 특별한 장소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前 매니저에 의해 시작됐다. 식당과 가게들이 늘어선 평범한 골목 몇 개를 지나 보이는 해열제의 간판.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음악이 새어나온다. 파란 형광 불빛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거미와 우리를 보며 미소 짓는 드라큘라가 반겨준다. 온갖 기괴스런 내부 장식과 턴테이블을 연신 돌리고 있는 DJ, 하지만 우리의 눈을 잡아끈 것은 빨간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 ‘수.술.실’이다. 그 곳의 수술도구는 알록달록한 가발과 상상 속에서나 입어 볼 수 있었던 색다른 의상들. 가장 많이 행해지는 수술에는 마녀, 고양이, 인도여자, 드라큘라, 콜걸로의 변신 시술이 있다. 제대로 망가지고 싶다면 ‘광년이’나 바보를 추천한다. 변신메뉴를 정하고 짧은 수술을 거치면 모든 준비는 끝. 수술실 문을 열고 나서면, 새로워진 내가 주인공이 되는 축제가 시작된다.

 

▲ 독특한 문양.
동서고금의 온갖 동화와, 영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것 같은 캐릭터들로의 변신을 즐기는 축제. 그 곳에선 해골이 술을 마시고, 원시인이 현란한 테크노를 추며, 악마가 삼지창을 휘두른다. 바에 앉아있는 매혹적인 콜걸과 그 옆에서 그녀를 응시하고 있는 드라큘라, 그리고 그들을 스쳐가는 처녀귀신의 모습도 눈에 띈다. 곳곳에서 터지는 플래시와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신기해하는 모습들. 하지만 짧은 적응기간이 지나면 그들은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되어 버린다. 일상의 나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너무도 다른 장소에서, 가슴을 쿵쾅이는 비트와 함께, 마치 냉동고에 들어간 것처럼, 우리를 괴롭히던 머릿속의 고열은 미친 듯한 하강곡선을 그리며 내려간다. 일상의 단순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 해열을 원했던 그대는 이제 얼어 죽음을 걱정해야 할지도...

 

시간은 흘러 어느새 축제는 끝이 났다. 모든 것을 잊고 음악에 몸을 맡겼던 시간들, 새로운 나의 모습에 어색해했던 모습들, 자신의 캐릭터에 몰입되어 세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또 다른 시간 속 무아지경에 빠져있었던 우리들. 하지만 다시 문을 열고, 내리쬐는 햇볕 속에 일상적인 풍경과 마주치며 느끼는 아쉬움. 얼굴을 만져보면 지워져 버린 분장에 ‘해열제’에서의 시간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을 꾀한 사람들!
콩나물시루와 같은 지하철과 지루한 강의, 항상 만나는 사람들과 항상 똑같은 장소에서의 시간. 그리고 다시 그 풍경속의 한 존재로 남아있어야 하는 운명. 여전히 계속될 스트레스와 짜증에 우리의 체온계는 수직상승하곤 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마음은 가볍다. 이제 당당한 발걸음으로 다시 반복되는 일상의 주기에 참여할 수 있다. 언제고 우리를 반겨 줄, 우리의 체온계를 낮추다 못해 얼려버릴 그 곳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열을 식혀준다는 의미의 ‘해.열.제’... 그대의 체온계는 36.5도를 가리키고 있는가? ‘

 

/조진옥, 김영래 기자 lyn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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