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모습도 볼 수 없고, 스승의 날 노래도 들리지 않는 5월 15일, 바로 우리 대학가의 풍경이다. 대학 축제를 즐기다가 스승의 날을 모르고 지나치는 학생도 많을 뿐더러, 대학교 선생님보다는 중,고등학교 은사님을 찾아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우리가 잊은 분들이 있으니, 바로 우리 학교 교수님들이다. 적어도 한 학기 이상을 우리와 함께하시는 교수님에게 우리는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교수님은 엄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기자인 우리들 역시 그런 선입견을 버리지 못한 채 우리대학교 사회학과 박찬웅 교수님(지난 1987년 사회학과 마침)을 만나러 그 분의 연구실로 찾아갔다.

5월 12일 우리대학교 백양로는 한창 축제의 열기에 젖어있었다. 수습기자들의 옷자락도 그 열기에 젖어있었으니 자연히 관심은 교수님이 학생이었던 시절의 ‘축제’로 모아졌다. 80년대 대학 축제는 말 그대로 ‘대학생 냄새’가 물씬 풍기는 행사였다고 한다. 그 때도 응원전과 공연이 있었지만 요즘 ‘아카라카를 온누리엷와 같이 연예인을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추어들을 위한 무대였고, 시대가 시대인만큼 축제에서 데모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교내에서 축제를 즐기다가 교외로 나가려고 하면 미리 나와 있던 전경과 충돌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최루탄이 터지면서 축제 분위기가 ‘파토’ 나는 것이 그 당시 전형적인 레퍼토리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 돼 버렸다.

 ‘학창시절 축제 때 기억에 남는 행사가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말에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권투시합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당시 노천극장이 꽉 찰 정도로 인기 최고였다는 권투시합, 권투시합 출전선수가 얼굴만 아는 사람이라도 응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고 회상한다.

예전의 축제와 오늘의 축제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마도 ‘참여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예전에는 즐기는 방식이 달랐을뿐, 아카라카는 모든 연세인이 즐기는 축제였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축제에 대한 기대로 휴강을 졸라대는 학우가 잇는 반면 휴강과 소음으로 짜증을 내는 학우들도 있어 이들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선생님께 축제 기간 동안 여러모로 힘들었을 학우들에게 한마디 해주십사 부탁했다.

“전체적으로 여유가 있었으면 해요. 축제라는 게 모두가 함께 어울리자는건데, 각자 상황 때문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이해해주면 좋을텐데요. 한 템포 낮춰서 여유있게.” 연세대학교 학생이었다가 연세대학교 스승이 되신 박찬웅 교수님, 박교수님의 학창시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교수님은 지금은 은퇴하신 박영신 선생님을 꼽으셨다. 전공을 제대로 택한건지 불안했던 1학년, 사회학의 재미를 알려주신 분이 박영신 선생님이셨단다. 특히 박영신 선생님은 질문, 답변 방식의 수업을 하셨는데, 그 방식을 싫어하는 학생들도 많았지만 박교수님은 묘한 긴장감이 좋아 현재 수업하실 때도 그 방식을 쓰신다고 한다. 또 그 당시 철학과 교수님들, 특히 박동환 교수님은 한가지 문제를 가지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고 한다.

“요즘 학생들은 신기하고 새로운 것부터 좁혀서 시작하는데 그렇게 공부하면 쉽게 지치고 나중에 기초가 약해져요. 음식만 슬로우 푸드가 아니라 공부도 천천히.”

 “학생들이 너무 바쁘게, 전략적으로만 사는 것 같은데 당장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여유있게 생각해보고 이것 저것 해보고 그런 게 중요해요.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빠른 사람에게서 오지않거든요. 많이들 하는 말이지만 고전을 읽는 것이 필요해요. 축적이 필요하고 발효가 필요한데 그런 것에 가장 좋은 게 고전이지. 요즘 대학생들은 나 때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가책이 없는 세대고, 주변의 시각에서 훨씬 자유로워요. 이런 성향에다 내공까지 쌓는다면 좋을 거예요. 지금 중요한건 긴 호흡으로 내공을 쌓는 것.”

교수님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한다. 요즘에는 학생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 가장 즐거우시다고. 교수님과 함께 사회학과 주점 장소로 향했는데 준비는 덜된 상태였지만 학생들은 활짝 웃으며 교수님을 맞이했다.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격려도 해주시고 사진을 찍기도 하셨다. 내년 쯤에는 은퇴하신 사회학과 1세대 교수님들을 인터뷰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하셨다. 그 때를 위해 지금 부단히 사진 찍는 연습 중이라고 하신다.

박찬웅 교수님은 우리대학교의 교수님이시지만, 학생들의 스승으로서만이 아니라 연세인들의 선배님, 은사님들의 제자이기도 하다. 학생들 생각부터 하시고, 은사님의 기억까지 소중히 여기는 박찬웅 교수님을 찾아간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었다. 이번 인터뷰로 인해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딱딱하고 엄격한 ‘대학 교수’의 이미지가 깨졌음은 물론이다.

/이승호, 한정원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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