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은 이사중, 기지이전의 후폭풍. 동두천, 평택을 가다

닭똥집보다는 ‘Chicken Gizzard’란 단어가 더욱 어울리는 동네, ‘Dollar Exchange’라고 씌어진 환전상이 즐비한 동네. 바로 미군 제2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캠프 케이시 앞, 소위 ‘기지촌’이다. 벚꽃이 우수수 떨어질 무렵 찾아간 이 동네에는 고요함과 한적함을 넘어 을씨년스러움마저 감돌고 있었다.

“30분 동안 이 가게에 손님이 몇 명이나 오는지 보라고.” 이 동네에서 30여년째 보세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정인근씨의 말이다. 실제로 기자가 있었던 30분 동안 이 가게를 찾은 손님은 손으로 꼽을 정도. 정씨는 “하루 매상이 예전의 20% 수준으로 급락했다”며 “이 동네에는 미래가 없어 곧 타지로 이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에는 과거 달러를 ‘뭉치로’ 벌어들였다는 미군 전용클럽을 찾았다. ‘주스걸’이라 불리우는 필리핀 여성들이 미군을 접대하고 있었다. 여기에서는 미군이 한잔에 2만원하는 주스를 사면 30분간 대화를 한다. 클럽 안에는 비록 낮이라고는 하지만 손님이 단 한명밖에 없어 불황을 짐작케 했다. 두달 전 마닐라에서 왔다는 수잔나양은 “손님이 계속 줄어 한달에 고작 60만원밖에 벌지 못한다”며 “조만간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리틀 시카고’라고 불리우며 경제적 번영을 누려왔던 보산동 기지촌이 이처럼 침체를 겪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바로 지난 2004년 결정된 미군기지 이전때문이다. 주한미군의 재배치 계획에 따라 동두천·의정부 지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부대는 오는 2008년까지 대부분 평택·오산지역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동두천시의 경제는 철저히 미군 예속적이다. 지난 2003년 동두천 지역내 총생산량(GRDP)은 7천4백65억원으로 이중 미군 관련 생산량은 32.65%에 달한다. 또한 미군기지에서 일하고 있는 내국인 노동자의 숫자는 모두 5천여명으로 추산되며 동두천시의 재정자립도는 경기도 27개 시·군중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동두천시 전체 면적의 42%가 미군 공여지인 것을 감안하면 놀랍지만은 않은 수치다. 따라서 미군기지 이전은 ‘미군 없는 동두천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기지촌 상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정씨의 옷가게 앞에서 액세서리 노점상을 운영하고 있는 또다른 상인은 “미군 때문에 먹고 살아온 동네인데 하루 아침에 미군이 떠난다니 착잡하다”며 “결국 죽어나는 것은 우리”라고 한탄했다. 또한 동두천시의 한 관계자도 “미군기지 이전으로 기지촌이 아닌 다른 동네도 실업률 증가, 부동산 가격 급락 등의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동두천시 최고의 번화가인 중앙로 일대 상가들은 최근 임대료를 일제히 20~30% 가량 인하했다.

동두천시와 미군의 악연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51년 미군 24사단이 머물면서 시작된다. 이후 이곳은 미군 24사단, 3사단, 7사단, 2사단 등이 연이어 주둔하며 동북아시아 최대의 단일 미군기지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주변에 3백62개에 달하는 상가가 들어서면서 일종의 기지촌을 형성했다. 이러한 기지촌은 한때 우리나라 GDP의 1%이상을 벌어들이며 동두천시에 ‘돈두천’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하사하기도 했다. 현재 일부 동두천 시민들은 ‘동두천시 미군현안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를 통해 대학·공단 등의 유치, ‘지역발전균형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포스트 미군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대책위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있는 동두천시의회 홍석우 의원은 “아무런 산업기반이 없는 동두천시가 미군 없이도 살아날 수 있으려면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움직임은 바로 ‘동두천 시민연대(아래 시민연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미군기지 무상반환 운동이다. 지난 1951년 미군 주둔시 상당수의 동두천 시민들은 자신의 땅을 군용부지 확보를 위해 넘겨줘야 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는 시가의 삼분의 일만이 지급되었을 뿐이며 그나마 그 형태가 채권 등이었다. 이러한 채권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현금으로 교환될 수 있는 특성으로 인해 중간에 소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민연대 신동용 사무국장은 “이전되는 미군기지 땅을 부당하게 고향에서 추방된 원소유주에게 되찾아주자는 운동을 지난 2004년 9월부터 펼치고 있다”며 “반환되는 미군기지가 개발업자들에게 팔려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게 사용된다면 원소유주들에게서 땅을 두 번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오늘날 동두천시의 위기는 동두천시 자신이 자초한 책임이 크다. 지역경제를 미군에게만 의존한 나머지 산업공단 등의 유치에는 무관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군기지 이전이 결정된 지금에 와서 책임소재를 묻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것보다 동두천시가 이제는 ‘기생도시’, ‘기지촌’이라는 부끄러운 오명을 떨쳐버리고 진정한 자생도시로 거듭나는 것이 관건이다. 미군과의 50년 동거가 끝난 동두천시의 봄은 불확실한 미래와 더불어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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