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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 어디로 가는가
  • 김아람 기자
  • 승인 2005.05.09 00:00
  • 호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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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토)은 우리대학교가 창립 120주년을 맞는 날이다. 창립년도는 1885년 선교사 알렌에 의해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 세워진 때를 기점으로 한다. 광혜원은 4월에 설립됐지만 우리대학교는 이후 세브란스의과대학과 연희대학교가 통합되는 과정에서 창립기념일을 5월 둘째 주 토요일로 정했다. 연세의 역사는 크게 통합 이전 세브란스와 연희의 역사와 통합 이후 연세대학교의 역사로 나눌 수 있다.

광혜원 시초에 대한 논란

일부에서는 광혜원을 우리대학교 역사의 시작으로 보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특히 우리대학교는 광혜원을 두고 서울대 의대와 누가 광혜원의 후신인가에 대한 논쟁을 여러 차례 벌인 바 있다. 지난 1980년대 서울대 의대에서 국가중앙병원의 위상을 이유로 광혜원을 기원으로 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 논란의 시초였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병원 창립 19주년을 기념해 지난 1997년 「서울대학교병원보」 기획특집으로 서울대 자체에서 병원 연혁에 관한 좌담을 가진 바 있다. 이 좌담에서 서울대 사회학과 신용하 교수는 “광혜원은 국립 체제로 운영된 병원이었는데 1904년 세브란스 병원이 지어진 이후 광혜원의 대부분 의사와 의료시설은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갔고 국립병원은 광제원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두 학교 모두가 광혜원을 전신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좌담에서 서울대 의사학교실 황상익 교수는 “광혜원이 최초의 근대 서양식 병원일지는 몰라도 최초로 근대 서양의술을 시술한 의료기관은 1877년 해군 소속의 제생의원이었다”라며 광혜원을 근대서양의학의 시초로 단정짓는 것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우리대학교는 내각회의록이나 알렌 등 선교사들의 일기를 비롯한 사료를 연구해 광혜원이 제중원을 거쳐 1904년 세브란스 병원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입증해 반박했다. ‘비록 광혜원이 국립으로 운영됐으나 정부가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고 실제로는 알렌을 비롯한 선교사들의 역할이 컸기 때문에 사립병원인 세브란스로 이어졌다고 보는 데 무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확장의 역사, 부산 분교와 원주캠

발전을 거듭하던 연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교를 확장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연희대학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됐으나, 그곳에서 부산 영도 가교사를 분교로 운영해 기존의 수업들을 재개하는 한편 현재 생활과학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육을 실시했다.

지난 1953년에 연희대학교는 다시 서울로 복귀하는 한편 분교도 계속 운영했다. 남아있던 분교는 지난 1959년에 실업초급대학으로 명칭이 변경된 뒤 1963년에 가정대학으로 개편돼 현재 생활과학대학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부산 분교는 지난 1966년에 서울로 이전됐다. 가장 대표적인 연세의 확장은 원주캠퍼스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977년 의과대학이 원주분교로 신설됐고, 1981년 원주대학으로 승격된 것이 그 시초다.

그 이후 지난 1982년 원주대학이 원주의과대학과 원주대학으로 분리되면서 1984년에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화학과, 생물학과가 신설되는 등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의공학 분야는 지난 2004년 ‘1회 대한민국 지역혁신박람회’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할 만큼 특성화된 분야로써 인정받고 있다. 우리대학교는 지난 1992년 ‘연세발전위원회’를 출범해 다가올 21세기의 발전 전략을 구상해왔다. 개화 학문과 현대의학, 국학 발전의 중심지였던 광복까지의 60년, 근대화 및 민주화의 중심역할을 해온 광복 이후 지금까지의 60년을 넘어 세계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연세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글로 벌 연세의 이미지에 걸맞은 폭넓은 발전을 기대해 본다.

김아람 기자  rammy1177@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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