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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섹션] 120주년 기념 학술기획(1) - 연세와 신학연세신학, 무거운 짐을 지고 한국 신학을 이끌다 (연합신학대학원장 이양호 교수)

우리나라 최초의 전도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가 내한한 것은 1885년 4월 5일이었으며,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후에 제중원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다시 세브란스병원으로 명칭이 바뀜)이 설립된 것은 1885년 4월 10일이었다. 제중원은 의료선교사인 알렌에 의해 시작됐고, 언더우드 목사는 제중원의 시작에서부터 알렌 선교사와 동역했다. 언더우드 목사는 제중원에서 약제사로 봉사했으며, 또한 물리와 화학을 가르쳤다. 연세신학은 이렇게 언더우드 목사와 제중원과 함께 시작됐다. 그는 처음부터 기독교 종합대학을 설립할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내한한 지 30년 후, 서거하기 1년 전인 1915년에야 그 꿈이 이뤄졌다. 그 때 문과, 상과 등과 함께 신과가 창설된다. 언더우드 목사는 연세신학의 아버지인 것이다.

언더우드 목사의 한국사랑 연세사랑

언더우드 목사는 길지 않은 31년 동안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일을 했다. 그는 한국 역사상 최초로 영한사전과 한영사전을 출판해 우리 민족의 국제화에 공헌했으며, 한국을 전세계에 알리는 수많은 논설과 책을 집필했다. 「그리스도 신문」을 창간하여 우리 민족의 계몽에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YMCA를 창설하여 청년운동과 함께 애국자강운동을 전개했으며, 농구, 야구, 스케이트를 비롯한 여러 스포츠를 국내에 도입해 국민건강증진에 기여하고, 음악교육과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활동을 통해 국민정서순화에도 공헌했다. 그는 최초의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를 비롯해 수많은 교회를 창립했으며 한국 전역에서 순회전도를 했다. 성서를 우리말로 완간했고 찬송가를 출간했으며, 기독교서회를 조직하여 문서를 통한 교육과 선교에 이바지했다. 성경학원을 창설하여 성직자를 배출시켰으며 무엇보다도 연희전문학교를 창립해 수많은 인재들을 교육하게 했다. 호열자(콜레라)가 서울 장안을 휩쓸고 있을 때는 목숨을 내놓고 환자를 치료해 주고 사자의 장례를 주관했으며 불쌍한 고아들을 모아 양육하고 교육하여 고아들의 아버지가 돼줬다. 한마디로 말해 그는 한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한국역사에 있어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에 비견될 만한 인물이었다.

연세신학의 발전 과정

『연세대학교 백년사』(1권 162쪽)에서는 “신학과는 각 교파에서 경영하는 신학교가 있었으므로 본교와 같이 기독교 각 교파 연합재단의 합작으로 세워진 학교에서는 어느 교파에 치우칠 수 없었기 때문에 개강하지 않았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 학교 학적부를 보면 1916년 4월 7일 신과에 김성식, 김정택, 이기동 씨가 입학하였으며, 1917년 4월 7일에는 이명숙, 이병주, 황문도씨가, 1918년 4월 7일에는 이종철, 최태용씨가, 그리고 1927년 4월 10일에는 송흥국씨가 2학년에 편입학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 사람도 졸업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1916년에 주기철 목사가 입학하였으나 그는 신과가 아니라 상과에 입학하였다. 그는 민족산업중흥을 통한 민족구원의 꿈을 가지고 상과에 입학하였으나 졸업을 하지 못하고 질병 때문에 중퇴하였다. 주기철 목사는 일제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한 분으로 한국교회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다. 연세에 주기철 목사의 기념관을 세워 그의 신앙정신을 전수하려고 한다면, 한국교회의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1945년 민족의 해방은 교회의 해방이었으며, 또한 연세의 해방이었다. 1944년 5월 10일에 폐교됐던 연희전문학교가 1945년 10월 27일에 재출발하였다. 이 때 신과도 재개됐으며 1946년 2월 20일 통계에 의하면 신과의 재적생은 51명이었다. 1950년 5월 10일 졸업식에서 최초의 신과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그 후 지금까지 모두 1천9백52명의 학사, 2백78명의 석사, 50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지난 1955년에는 신과대학에 종교음악과가 창설됐으며, 종교음악과는 후에 음악대학으로 발전했다. 1981년에는 신과대학에 사회사업학과가 창설됐으며, 이는 후에 사회복지학과와 사회복지대학원으로 발전했다.

지난 1964년에는 연세대학교, 감리교신학대학, 한국신학대학 등이 연합해 연합신학대학원을 설립하였다. 그동안 연합신학대학원에서는 1천1백명의 석, 박사를 배출하고 목회자 연장 교육 과정인 목회지도자과정을 개설하여 2천5백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또한 1981년에 개설된 하기 연세목회자신학세미나는 지난 24년간 모두 1만2천9백41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연세신학은 한국 신학계를 이끌어왔다. 현재 전국 신학 교수들 가운데 4분의 1 정도가 연세 출신 신학자들이다. 그동안 많은 신학대학과 일반대학의 총장들을 배출했으며, 한국 교계의 많은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그 외에도 많은 회사들의 대표이사들과 정치인들을 배출했다.

한국사회에서 지니는 연세신학의 의미

연세신학의 특징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연세신학은 에큐메니칼 신학을 지향하고 있다. 연세신학은 특정 교단의 특정 신학을 따르는 교단 신학대학과는 다르다. 개신교 전통에 서있되 여러 교단신학을 창조적으로 종합하는 것이 연세신학의 과제이다. 그리고 연세신학은 학문적 신학을 지향하고 있다. 연세신학은 세계 최신 신학을 연구하고, 최신 연구방법을 소개해 왔으며, 이로써 한국 신학계를 이끌어왔다. 또한 연세신학은 국학을 발전시켜 온 연세대학교의 전통에 따라 한국적인 것을 찾아 발전시킴으로써 세계 신학에 공헌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세신학이 한국 교계와 신학계를 이끌어왔다면, 앞으로 연세신학은 세계 교회와 신학계를 이끌어갈 것이다. 지금도 많은 연세 출신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미국 등 세계에서 목회와 신학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이런 활동은 크게 증가될 것이다. 또한 아시아, 아프리카 학생들이 연세에 와서 신학연구를 하고 있으며, 이 숫자도 앞으로 크게 증가할 것이다.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은 앞으로 아시아, 아프리카의 중심 신학교육기관으로 우뚝 설 것이며, 세계 신학의 한 중심축이 될 것이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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