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1960 ~ 1989)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 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아무것도 모르는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빈 집」 중에서

처녀시집이자 유고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을 통해 기형도 시인(지난 1985년 정치외교학과 마침)은 ‘1980년대 윤동주’로 불린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가세가 기울고 불의의 사고로 누이가 죽는 등 불우한 유년시절을 겪은 그는 어릴 적 느낀 죽음과 절망, 불안과 허무의 이미지를 이후 자신의 시에서 개성적인 문체로 표현했다.

‘연세문학회’에서 활발한 시작(詩作)활동을 한 기형도 시인은 우리신문사가 제정한 ‘박영준 문학상’ 소설부문, ‘윤동주 문학상’ 시부문에 응모해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그는 기자로 활동하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특히 1985년에는 시 「안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다. 그는 투쟁적이고 정치적인 시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줄곧 자신의 시 세계를 다지는 작품을 발표했다. 자기 성찰로 가득한 그의 시는 1980년대의 상처입은 청춘들에게 알 수 없는 위안을 줬다.

기형도 시인은 지난 1989년 『입 속의 검은 잎』 시집을 준비하던 중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29세로 요절해 생전에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한 기형도 시인은 자기 성찰적인 시 세계와 구축으로 ‘1980년대 윤동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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