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이순(1911 ~ 1987)

‘한국 가정학 교육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최이순 교수는 가정학 분야에서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여성’이라는 사회적으로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한국의 가정학 교육의 기초를 세우고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 오리건 주립대 공로표창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다.

최교수는 1933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가정과를 졸업한 후 1938년 미국 오리건 주립대 대학원을 거쳐 1939년에는 모교에서 처음 강단에 서게 된다. 그녀는 지난 1956년 우리대학교 교수로 자리를 옮겨면서 ‘연세’와 처음 인연을 맺었다. 그 후 최교수는 지난 1964년 가정대학 학장, 1968년에는 생활과학연구소장을 거치며 지난 1977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우리대학교에서 가정학 교육에 전념하게 된다. 또한 그녀는 초대 여학생처장을 맡을 정도로 가정학뿐만 아니라 ‘여성’의 권리 신장에도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최교수는 교육자로서의 활동 외에 여성지도자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줬다. 대한가정학회장과 YWCA 재단이사,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등 그녀의 화려한 이력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지난 1987년 지병으로 숨을 거뒀지만 자신의 시신을 후학의 의학연구를 위해 기증할 정도로 평생을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살다간 최이순 교수. 현재 생활과학관에는 최교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최이순홀’을 만들어 세미나, 전시회 등 각종 행사를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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