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보(1893 ~ 1950)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저항하며 민족의 얼을 지키는 일에 평생을 바친 민족사학자 위당 정인보 선생.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정인보 선생은 18세의 어린 나이로 중국 상해에 가서 박은식, 신채호 등과 함께 ‘동제사’를 조직해 정칟문화 계몽활동을 주도했다.

1923년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한 정인보 선생은 국문학·국사·한문 등 국학 전반에 걸쳐 강의하며 ‘국학’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힘썼다. 정인보 선생은 민족의 문화적 역량을 일깨우고자 「동아일보」에 1931년에는 『조선고전해제』를, 1933년에는 『양명학연론』을 연재하는 등 국학의 연구·보급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조상을 원망하며 실의에 빠진 민중들에게 ‘우리 역사가 낳은 큰 인물’로 단군, 세종대왕 등을 연구·소개했다.

1930년 좌우익으로 갈라진 민족진영이 통합에 실패하고 이듬해 일제의 만주사변이 시작되면서 민족의 사기가 추락하자 정인보 선생은 1935년에 『5천년간 조선의 얼』을 발표했다. 그는 “어릿어릿하는 사람은 얼빠진 사람이고 이는 꺼풀만 남은 사람”이라며, “사람의 죽음 가운데 육체의 죽음보다 더한 것이 마음의 죽음이니 우리 민족의 마음이 되살아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학 연구를 통해 ‘민족얼’을 확립하고자 했던 정인보 선생은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돼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