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외부로부터 평가하는 데서 벗어나 내부로부터 느껴라"

▲“넌 인상이 참 좋구나”, “넌 정말 이뻐”, “넌 정말 똑똑한 여자야” 당신은 이 표현들 중 어떤 말을 가장 듣길 원하는가? 어쩌다 마주친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한참을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 처음 이 물음과 마주한 당신도 역시 그렇지 않았는가. 많은 여성들이 ‘아름다운 여성’과 ‘지적인 여성’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아마도 아름다운 여성이 되기를 원할 것이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주인공 브리짓은 이 시대가 바라는 아름다운, 아니 최소한도 그녀 주변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한 그런 여성은 아니다. 영화 첫 부분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All By Myself」를 부르는 브리짓의 모습에서 애처로움과 함께 서글픔까지도 느껴진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명의 멋진 남성이 있다. 영화가 끝나고 올라가는 자막과 함께 떠오르는 미소는 ‘저건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지’하는 씁쓸한 웃음이었지만, 또한 그 웃음은 대리만족으로부터 오는 뿌듯함이기도 했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만남 중에 가볍게 시작된 ‘여성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열띤 토론으로 번진 적이 있다. 아무리 진보적인 남성이라도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자 하는 욕망만큼은 본능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주장이 단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던 극소수의 의견이라고 단정 짓지는 말자. 외적으로 매력이 없는 여성들의 평균소득은 예쁜 여자 동료들의 소득보다 평균 4%가 낮다는 보고 결과가 있다.

▲하지만 여성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이 과연 남성들의 시선, 타인의 평가일까? 당신은 어떤 모임에 가면 어느 여자가 나보다 더 예쁘고 더 좋은 옷을 입었는지부터 살피지는 않는가? 성형의 충동은 한가인보다 높은 코, 김태희보다 매력적인 눈을 갖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여성들이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 역시도 본능이기 때문에 그 본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가. 그렇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는 타인이 아닌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메트로섹슈얼이다 뭐다 남성들도 더 이상 외모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요즘 세상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망상은 개인을, 그리고 나아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우리가 자신을 외부로부터 평가하는 데서 벗어나 내부로부터 느끼는 방법을 터득 할 때, 비로소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브리짓은 비록 아랫배를 집어넣기 위해 아줌마 팬티를 입고, 여러 사람 앞에서 술에 취한 채 음정 박자 무시하고 노래를 불러 대지만 결국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한다’는 남자와의 해피엔딩을 이룬다. 비록 영화에서 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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