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나라당은 성폭행(강간) 범죄를 한 차례 이상 저지른 성범죄자를 상시 감시하기 위해 전자칩이 부착된 팔찌나 시계를 채우는 ‘전자위치확인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제도는 성범죄자의 심장박동과 위치를 동시에 점검할 수 있는 칩을 내장한 팔찌나 시계를 성범죄자에게 강제로 부착해 성범죄를 미리 예방하자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다.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전자팔찌 제도는 미국과 영국에서는 실시되고 있으며, 프랑스와 스위스는 지난해 법안이 통과되는 등 세계적인 추세다.

최근 우리 나라에서 전자팔찌 제도 도입이 제기되자 성범죄 가해자의 인권 침해가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편으로는 성폭력 희생자들을 중심으로 전자팔찌보다 더욱 강력한 처벌 방안을 마련해 성범죄를 근절해야 한다는 입장이 맞서고 있다. 이렇듯 성폭력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들이 법적 제도에 대한 논란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 우리 나라의 상황이다. 이러한 논의는 범죄 발생 후 가장 효과적인 대응 방식을 모색한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성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본질적인 논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더이상 성폭력에 대한 문제가 논쟁으로 그치지 않고 근절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방안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의 전환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성폭력이란 개인의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정신적, 언어적, 신체적 폭력으로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지는 모든 성적 언동을 말한다. 오늘날 성폭력이라 함은 신체적인 폭력인 형법상의 범죄일 뿐만 아니라 여성에게 굴욕감과 수치심, 모욕감을 주는 모든 성적 언동을 포함한다. 넓은 범위에서 성희롱도 성폭력에 해당한다. 성폭력은 성적 자기 결정권의 침해로, 상대방과의 인간적 합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 인권에 대한 폭력 행위이며 사회적 범죄다.

성은 인간의 어떠한 것보다 문화적 수준을 대변하는 행위다. 성은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친밀감을 확인하여 나와 타인이 하나가 되는 경험이다.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성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며, 그 경험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중요한 문화적 행위다. 우리는 흔히 성적 충동을 말할 때 인간을 동물적인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것처럼 간주한다. 그러나 인간은 동물적인 욕구를 조절하여 문화를 이루는 성숙한 존재다. 성 역시 인간의 동물적인 충동의 발산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성장시키는 성숙한 인간의 문화적 행위로 간주돼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성이 어떻게 다루어지는 것인가는 한 사회의 문화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는 잣대다. 2분마다 1건씩 강간이 발생하는 우리나라의 성문화 수준은 미천하기 그지없다. 경제적 성장이 아무리 많이 이뤄지더라도 성적 자기 결정권이 훼손되는 사회는 문화적으로 발전하지 못한 사회다. 성숙한 문화인은 자기의 기쁨과 쾌락을 타인과 함께할 줄 아는 지혜가 있는 행위를 한다. 우리 모두 성을 행복하게 이룰 수 있는 문화인으로 거듭 자신을 성장시키도록 해야 한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한금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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