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지난 4월 27일 평소에는 소일하러 나온 노인들로 북적대던 종묘공원에 빨간 모자와 빨간 조끼 차림의 군중 3천 2백여명이 빼곡히 운집했다. ‘전국노점상연합’(아래 전노련),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아래 사회연대) 등 70여개 단체가 개최한 ‘전국빈민대회’(아래 빈민대회)의 현장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인의 장막을 헤치고 들어가자 겉보기에도 당찬 모습의 사회연대 유의선 의장이 “투쟁으로 인사드리겠다”며 ‘투쟁’이란 단어를 군중들과 함께 복창하고 있었다.

외면적 풍요와는 달리 우리사회의 빈곤문제는 이미 위험 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지난 2004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거리의 노숙인들은 지난 1999년에 비해 두배 이상 증가했으며 신용불량자는 4백만에 달하고 있다. 연단에 선 연사들은 이러한 현실을 격렬하게 성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노련 김경림 선전담당국장은 “현재의 빈곤 실태는 결국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인하다”며 노무현 정권을 규탄하기도 했다. 연사들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군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이에 화답했다. 빈민대회 조직위는 이번 대회를 통해 국방비 삭감을 통한 복지예산 증진, 노점상 단속 중단, 거리생활자 지원체계 구축 등 11개 핵심요구안을 구체화, 정부측에 요구할 계획이다.

김국장은 “빈곤문제에 대해 학자나 정치인이 아닌 우리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번 대회를 개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에 대한 회의적 목소리도 있다. 현장에 있던 시민 강유석씨(65)는 “이들이 요구하는 국방비 삭감을 통한 복지예산 증진 등과 같은 요구사항이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현장에는 이색인물들도 보였다. 각종 집회 현장을 찾아다닌다는 크리스티앙 칼씨는 지난 2002년 독일에서 왔다. 칼씨는 “과거 독일에서도 대학생들의 투쟁을 통해 상당한 민주화가 이뤄졌다”며 약자를 향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주문했다. 실제로 이날 대회에는 사회당 학생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참여해 민중들과의 끈끈한 연대의식을 새삼 과시하기도 했다.

시종일관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된 이날 대회는 민중들의 각종 요구사항이 적힌 공을 연단 아래로 굴리는 퍼포먼스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번 빈민대회는 대중들에게 심각한 사회문제인 빈곤을 새삼 환기시켰다. 유의장은 “이번 행사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도록 요구사안들을 조만간 구체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의장의 당찬 포부가 결실을 맺을 때 우리사회의 해묵은 빈곤문제도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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