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5월의 구름'

지난 2004년 11월, 영화팬들에겐 작지만 소중한 공간이었던 ‘코아아트홀’이 문을 닫았다. 하이퍼텍나다, 씨네큐브 등과 함께 흔히 ‘예술영화 전용관’(용어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이라 불리던 코아아트홀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우리는 낯선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영화관 중 하나를 잃어버렸다. 코아아트홀의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영화 매니아들에겐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얼마 전 1969년에 세워져 그동안 한국영화의 역사와 함께 해온 허리우드 극장 자리에 ‘필름포럼’이라는 예술영화 전용관이 등장한 것이다. ‘갑자기 웬 예술영화 전용관에 대한 얘길 이렇게 길게 늘어놓느냐’는 의문을 가진 독자들은 지금까지 ‘천국보다 낯선 영화’에서 소개한 영화들의 목록을 찬찬히 살펴보길 바란다. 지금까지 ‘천국보다 낯선 영화’는 영화를 보기 위한 목적이 아닌 친구를 만나거나 데이트를 하기 위해 찾는 멀티플렉스에서는 도저히 찾아보기 어려운 작품들로 채워졌다. ‘필름포럼’이라는 새로운 영화관의 등장은 내가 이런 글들을 쓰는데 있어서 큰 기폭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필름포럼’의 개관 작품으로 선정된 터키의 영화감독 누리 빌게 세일란의 ‘5월의 구름’이란 영화다. 2002년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던 ‘우작’이 세일란의 대표작이지만 ‘5월의 구름’은 ‘우작’보다 3년 앞서 만들어졌다. 얼핏 보면 농촌의 지루한 이야기쯤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세일란 특유의 유머감각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이 스며들어 있다.

영화의 중심인물은 영화감독 무자파다. 신임감독이 갑작스럽게 고향으로 내려와 가족들을 동원해 영화를 찍는다는 이야기를 뼈대로 하고 있는 ‘5월의 구름’은 세일란 감독의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자전적인 영화다. 그는 자신이 첫 영화를 찍으면서 겪었던 일들을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 같은 영화 한편으로 재탄생시켰다. 영화를 찍는 것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가족들의 모습은 소소한 일상의 에피소드가 되어 영화 곳곳에 배치돼 있다. 아들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아버지는 산림정비사업을 하는 정부로부터 자신의 땅을 지키는 것을 염려할 뿐이고 대학시험에 떨어져 공장에 다니는 조카 사펫은 감독인 형에게 잘 보여 이스탄불로 함께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9살 꼬마 알리조차도 음악시계 때문에 영화를 찍고 있을 뿐 무자파의 영화 따위엔 별 관심이 없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 있듯이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 나갈 뿐이고 영화를 찍고 싶은 무자파만 답답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메타포가 될 수 있다”는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의 네루다의 대사처럼 ‘5월의 구름’의 풍경들은 모두 어떤 메타포를 지니고 있는 듯 하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하늘에 흘러가는 5월의 구름은 영화의 성격을 그대로 대변해준다. 마치 5월의 구름이 그러하듯이 영화 또한 별다른 자극이나 반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뿐이다. 그렇다고 굳이 이 영화를 관조적으로 감상할 필요는 없다. 그저 ‘영화 속에서 영화를 찍는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봐도 충분히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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