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의 오래된 물건에 다녀오다

동네 아이들과 우르르 몰려 앉아 구슬치기에 여념이 없던 때가 있었다. 특히 구슬을 한아름 따가는 날은 집에 들어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곤 했다. 그 때 그 시절의 가벼운 발걸음으로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추억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인사동 거리의 골동품 가게 ‘토토의 오래된 물건’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잡다하게 쌓여있는 물건들이 마치 오래된 고물창고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천장은 온통 옛날 영화 포스터로 도배돼 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오리지날 포스터부터 국내에서 하나뿐이라 전해지는 신성일·엄앵란의 「맨발의 청춘」 오리지날 포스터, 그리고 ‘들개’, ‘팔푼이며느리’, 만화 ‘전자인간’처럼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포스터들도 눈에 띈다. “어머나, 이게 머야~ 예전에 봤던 것들을 다시 보게 돼서 새롭네”하며 옛날 공중전화 앞에서 그럴싸하게 수화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는 송명선씨(25). 그녀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콩알탄, 딱지, 못난이 인형, 새까만 다이얼 전화기, 즐겨 먹었던 쫀드기, 아폴로, 신호등 사탕, 뽀빠이 과자, 만화 주제곡 ‘똘이장군’부터 서태지와 아이들의 레코드판까지 7평 정도의 좁은 가게에 없는 게 없다.

오랜만에 보는 ‘국민학교’ 4학년 1학기 산수 교과서도 그저 정겹기만 하다. 네모난 양은 도시락통, 영화에서만 보던 옛날 남색 체육복, 직사각형의 빨간색 캔디 가방과 신발주머니는 예전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연필 뒤에 지우개가 달려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하지만 절대로 지워지지 않고 누런 종이를 더 시커멓게 만들어버린 ‘최신식 연필 지우개’도 있다. 기억 속의 잊혀져가는 물건들이 바깥세상의 수많은 자동차와 높은 빌딩에는 전혀 관심없다는 듯이, 그 모습 그대로 추억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반겨준다. ‘토토의 오래된 물건’에는 상품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로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래서 그 너저분한 틈새 구석구석에서 못보던 물건을 찾아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진열장 밑에는 발간 당시 야한잡지로 분류된 ‘썬데이 서울’을 비롯한 몇 권의 잡지들이 쌓여있다. 세로쓰기로 쓰여진 이 잡지들을 넘기다 보면 히죽히죽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너만을 사랑해는 몽땅 거짓말’, ‘보컬그룹 멤버에 속은 어느 여인의 고발’등의 제목들을 훑어만 봐도 피식 웃음이 터지게 만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가게 안에는 ‘파는’ 물건보다 ‘안파는’ 물건들이 더 많다. 이 추억의 박물관을 나서면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물건들은 9년째 이곳을 운영해오고 있는 주인 민권규씨(43)의 수집품이다. 하지만 들어올 때 500원의 입장료만 지불하면 언제든지 이 물건들을 보고 즐길 수 있다. 요즘 오래된 물건을 즐겨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인사동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예전의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토토의 오래된 물건’이 사람들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이곳이 물건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부담없이 찾아갈 수 있는 ‘오래된 문방구’의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 오면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일상에 찌들어서 정신없이 살다가 가끔 이곳에 오면 편한 느낌이 들어 좋다”며 덜덜거리는 구식 선풍기 앞에서 흐뭇한 미소로 바람을 쐬고 있는 김성현씨(31)의 말처럼, 아련한 추억을 즐기러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토토의 오래된 물건’이라는 타임머신에서 막 내린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하루가 달리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숨가쁘게 달려만 왔다면 오늘 하루쯤 ‘토토’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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