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한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판별하는 표본이라면 대학은 그 사회의 도덕적 가능성의 바로미터다. 그것은 대학이 현존 사회의 관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미래 사회의 모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학에게, 사회의 타락의 정도에 관계없이, 언제나 최량의 정신적 순도를 유지함으로써 사회가 더 이상의 타락에 빠져드는 것을 막고 그 항로를 바른 쪽으로 되돌려 이끄는 정신의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을 요구하게 마련이며, 대학 역시 세상의 그런 요구를 기꺼이 자신의 소임으로 받아들이곤 하는 것이다. 한국의 대학이 그러한 사회적 역할을 곡진히 수행해 왔다는 것은 4.19 학생 혁명과 87년 6월 항쟁을 굳이 들 것도 없이 한국의 현대사가 통째로 증명하는 일이다. 그런데 최근 다양한 층위에서 나타난 지표들은 연세인들이 마땅히 보존해 나가야 할 그런 자긍의 역사를 스스로 팽개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 학내에서 시행중인 정직운동의 일환으로 실시한 의식조사에서 많은 학생들이 ‘커닝을 할 기회가 있다면 하겠다’고 답변해서 충격을 주었다. 시험 때마다 한 두건은 발생하고야 마는 커닝은 정직이 특별히 중시되는 공동체에서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사고(事故)다. 그런데 이번 조사 결과는 학생들이 더 이상 그것을 사고가 아니라 일상적인 행위로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게다가 그러한 ‘양심 불량’을 거리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놀라움의 정도가 자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대학인들이 사회의 도덕을 선도할 역할을 하기를 포기하고 사회의 타락의 뒤꽁무니에 편승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CCTV 설치 문제도 일상화된 양심 불량이 초래한 사태다. 언제부턴가 중도 게시판은 도난 물품을 찾기 위한 종이들로 가득 메워지고 있다. 또한 각 동아리방에도 무단침입자를 막고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잠금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도서관과 동아리방은 무한정 열려 있을 때 제 기능을 가장 충실히 발휘할 수 있는 장소이다. 그런 장소들에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폐쇄와 감시의 방책들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은 대학에 짜증스런 문제들이 발생했다는 의미를 넘어서 대학이 본래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대학은 아직 사회적 생산의 회로 속에 끼어들지 않았다는 점에 의해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가장 적합한 장소이다. 그 점에서 대학의 타락은 곧바로 사회적 타락의 악무한을 제어할 제동장치가 망가졌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대학에서 정신적 순도를 회복하는 일은 세상 전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항진하기 위해 긴급히 수행돼야 할 과제다. 그리고 그 과제의 수행 주체는 바로 대학인 자신 밖에는 없다. 몇몇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무감독 시험이나 원주캠퍼스 내의 양심자전거 운영 등은 그래도 우리 대학이 본래의 역할을 다하고자 애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가운 현상들이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실천은 대학인들의 일상 속에서 발휘될 때야 참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연세인 모두가 곱씹고 되새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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