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도 모른다'

17년 전, 도쿄에서 엄마가 4명의 아이들을 버리고 자기의 삶을 찾아 나선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라면 비정한 모성을 비난하는 시선으로 영화를 구성할 법 하지만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택했다. ‘아무도 모른다’는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그 누구도 동정하지 않지만 보고 나면 쓰라린 통증이 가슴 곳곳을 짓누르는 영화다.

5살부터 12살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4명의 아이들. 이 아이들의 엄마는 하나지만 아빠는 모두 다르다. 4명의 아이들과 엄마는 웃음꽃을 피우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지만, 결국 엄마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집을 나가고 만다. 큰 아들 아키라에게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는 쪽지만 남기고 사라진 엄마. 아이들은 엄마가 자신들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한번도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나름대로 자기들끼리 '사는 법'을 터득해 나가는 모습에서는 '기특함' 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또래의 아이들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돈을 모아서 뭘 사겠느냐는 질문에 '글로브', '피아노', '롤러브레이드'라는 소박한 대답을 내놓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네 이웃집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천상 어린 아이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집을 나갔다고 해서 절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첫째인 아키라가 엄마가 부쳐준 돈으로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기에는 그의 나이가 아직은 너무 어렸다. 12살의 남자 아이, 아키라는 도시 한복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녀 보지만 결국 돈은 다 떨어지고 수도와 전기가 끊기는 상황을 맞이하고 만다. 공원에 나가서 몸을 씻고, 빨래를 하고 화장실을 해결하는 아이들. 점점 상황은 더 악화되고 아이들의 표정에는 이미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어두운 표정만큼이나 아이들의 옷은 더러워져 있고, 머리는 덥수룩해졌다. 하지만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이웃들은 이 버려진 아이들을 외면한 채 단 한번의 따스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옆집에 아이들끼리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이웃들의 행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해 있는 무관심의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소녀, 사키뿐이다. 언제부턴가 아이들과 함께 하기 시작한 이 소녀는 끝까지 아이들에게 친구가 되어 준다.

"난 행복해지면 안돼?"라고 묻는 엄마를 비난하는데 카메라의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들의 살아있는 표정을 포착해낸 감독의 연출력은 영화를 보는 내내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가 상투적인 눈물을 자아내는 '슬픈 이야기'에 그치는 것을 비켜 가게 된 원인도 감독의 뛰어난 조율에 기인하고 있다. 소녀 가장 이야기는 이미 영화가 많이 다룬 소재일지 몰라도 끝까지 울듯 말듯 줄다리기를 하면서 볼 수 있는 영화는 흔치 않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으면서도 “연어알은 없어?”라고 물을 수 있는 천진난만함과 결코 울지 않는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 내가 이 영화에 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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