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나에 대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화목해지려는 가족 구성원들의 노력들이 모두 유전자의 이기적인 목적에 의해 결정된 행동이라면? ‘혈연간의 사랑’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지닌 자들에게는 섬뜩하게 들릴지도 모르나 인간 행동의 저변에 ‘유전자’가 깔려있다는 주장은 최근 30여 년간 유전생물학 분야의 정설이 돼 왔다. 1866년, 멘델의 완두콩 실험으로 인해 암시되기 시작한 유전자의 존재는 그 후 요한센과 모건 등 많은 과학자들의 실험을 거친 뒤 ‘유전자(gene)’라는 하나의 이름을 얻게 됐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은 사람의 유전자 지도를 작성하고, 식물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사람의 건강에 좋은 식품을 만들어 낼 정도로 유전자를 활용하고 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형질을 결정하는 인자인 유전자는 우리의 몸을 전적으로 결정하는데, 이 유전자는 ‘이기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로 이루어진 로봇기계?!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지난 1976년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통해 인간을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이 짜여진 로봇기계’라고 말한다. 유전자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을 유지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심지어 그는 인간이 이타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도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조건을 조성하는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라고 전한다. 그는 ‘유전자는 이기적인 본성에 의해 작용한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유전자의 자기보존성, 이기적 목적을 둔 이타적 행동, 노화이론, 가족계획, 가족 내부의 구성원간의 갈등, 암수의 다툼과 같은 예를 든다. 이 모든 이기적인 생존전략의 목적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보존하기 위해서이고, 그 결정적 방안으로 생물체들은 바로 ‘교미’를 선택한다.

 성의 전략과 사회 생활에 숨어있는 유전자

물론 교미 방법과 배우자 선택에도 유전자의 성(性)전략이 숨어있다는 것이 도킨스의 주장이다. 생물체는 가능한한 암수 모두 같은 수의 배우자 혹은 교미대상을 원한다는 점에서는 이해관계가 일치하지만, 자식들의 양육부담을 각각 누가 질 것이냐는 점에서는 이해관계의 불일치가 생겨난다. 한 자식에 대한 생산과 부양에 대한 투자량을 줄일수록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자식의 수를 많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형이고 영양분을 많이 가진 난자를 소유한 암컷의 유전자는 수컷의 그것에 비해 투자량을 줄이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암컷은 자신이 버림받거나 더 많은 것을 투자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을 위한 전략을 선택한다. 암컷의 최후수단인 교미를 거부하거나 수컷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수컷의 성실함과 가정적인 성격을 살펴보기 위해 오랫동안 접촉을 거부하는 수줍어하는 행동을 보이거나 신랑후보자에게 집짓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것은 현대에 소위 능력 있는 남성을 원하는 여성들의 요구와도 연관이 되는데 이것은 결국 ‘난자’라는 진화적 기초에서 비롯한 결과라는 것이 도킨스의 설명이다.

배우자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관계에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유전자의 이기적 속성은 그대로 남아 있다. 도킨스는 ‘죄수의 딜레마’와 ‘영합게임’과 같은 예를 들면서 상대방과의 사회적 전쟁에서 생존하려는 유전자를 설명한다. 그는 서로의 깃털에서 진드기를 제거하는 ‘마음씨 좋은’ 거래를 하는 새들에서 식물, 동물,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음씨 좋은 ‘진화적으로 안정된 전략(EES, Evolutionarily Stable Strategy)’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자칫 이기적 유전자와는 대립되어 보이는 이 전략은 사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최적의 방안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영합게임’이나 ‘비영합게임’과 같은 재미있는 사례가 생물체의 생존본능을 설명하기도 한다. 한쪽 선수의 승리가 다른 쪽 선수의 패배가 되는 영합게임에 반해 서로 함께 살아남고자 하는 것이 비영합게임이다. 이것은 인간의 운동경기에서도 흔히 ‘서로서로 살아남기 위해 비겨주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사회 환경이 유전자들을 새로운 전략에 부딪히게 하나 이것 역시 모두 살아남기 위해 전략에 따라 서로 협력하게 된다.

문화적 요인에 대한 또 하나의 설명

그렇지만 이기적 유전자 이야기는 인간 행동의 모든 것을 진화론에 전적으로 의존해 설명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래서 유전적 요인 외에 환경 및 문화적 요인에 대해서도 도킨스는 언급한다. 그는 인류의 문화 역시 복제와 변이를 통해 번식하는 인자라고 규정했고, 이 문화적 진화의 단위를 모방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mimeme’에서 착안해 ‘밈(meme)’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다. 밈 역시 유전자처럼 복제되면서 퍼져나가는 습성이 있고,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환경에 잘 적응한 밈만 선택되어 존속하고, 나머지는 사라지는 것이다. 인간 행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 문화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고 하는 도킨스의 의견은 실상 문화적 요인마저 유전적인 현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사실 이기적 유전자 이야기에서 문화적 요인을 도입했다 하더라도 이기적 유전자는 가진 자의 승리를 강조할 뿐이다. 오늘날 흔히 말하는 ‘능력’이라는 것 역시 유전자적인 한 능력이라면 나머지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최영 교수(이과대·유전학)는 “어떤 환경에서는 우수한 것이 다른 환경에서는 우수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우수하다는 것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다”며 유전자의 우수성 기준에 대한 유연성을 말했다. 우수성에 대한 논의를 제외하더라도 암수의 행동을 설명하는 도킨스의 의견은 ‘수줍은 암컷’을 최선으로 보고 그 원인이 유전적인 것이라고 설명하기 때문에 여성은 유전적으로 수줍어하는 것이 환경에 살아남는다고 하여 성적인 논란을 일으키기에도 충분하다.

사회생물학적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과 문화적 학습을 통해 결정되는 인간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에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어느 한가지의 의견에 강경한 주장을 하기보다는 모든 요인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기적 유전자’ 이야기는 우리가 학습되어 온다고 믿어왔던 가족의 형성이나 연애, 인구제한과 같은 인간의 행동들을 철저히 자신만을 위하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그 점에서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유전자는 현대인들의 지적 사고에 역설적으로 이타적인 기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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