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은 사람 -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

반쯤 벗겨진 머리에 소탈한 점퍼차림. 분명 우리가 생각하는 국회의원의 모습은 아니다. 수십년동안 노동운동을 진두지휘해온 투사의 모습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만이 그가 지내온 녹록치 않은 세월을 짐작케 할 뿐이다. 옆집 아저씨같은 푸근한 인상의 주인공 민주노동당(아래 민노당) 단병호 의원을 지난 2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지난 2004년 4월 원내진출에 성공, 기성 정치판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민노당. 당사자인 민노당 의원으로부터 지난 1년에 대해 듣고 싶었다.

위기거나 혹은 기회거나

“국가보안법 폐지, 이라크 파병반대 등 진보적 목소리를 정치쟁점화시킨 점은 평가받을 만하지만 소수정당으로서 뜻을 온전히 관철시키는 것이 힘들었다.” 민노당의 지난 1년에 대한 단의원의 평가다. 현재 국회에서 민노당과 같은 비교섭단체는 대표연설도 못할 뿐 아니라 발언시간조차 제한된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때문에 민노당은 지난 2004년 이라크 추가파병 등 굵직한 현안처리과정에서 쓴잔을 마셔야만 했다. 이에 따라 민노당은 최근 20석인 교섭단체 하한선을 10석으로 완화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강기갑, 최순영 등 일부 비례대표들은 오는 2008년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며 저변을 보다 확대하기 위해 힘쓰고 있는 중이다.

소수정당이라는 한계뿐 아니라 민노당 내부의 문제점도 존재한다. 민노당의 주요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아래 민주노총)의 파행운영이 그 중 하나다. 민주노총은 지난 2004년 12월 산하단체 노조 채용비리 사건으로 파문을 일으킨 데 이어 지난 2월 대의원대회에서는 노선갈등을 둘러싼 폭력사태까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진보와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투쟁해온 민노당의 지지도까지 동반추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과거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노동계의 상징적 인사로 알려져 있는 단의원은 “민주노총 내부의 혼란 때문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다”면서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자생력을 지닌 조직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여 새삼 민주노총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과시했다. 한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손호철 교수와 같이 민노당에 대해 “국가보안법 폐지 등 거시적 안건에만 집착해 정작 민생에는 소홀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한 예로 민노당은 최근 독도에 국군 주둔, 주한 일본대사 추방 등의 비현실적인 안건을 발표해 빈축을 산 바 있다. 단의원은 “틀린 말이 아니다”며 비판을 수긍하면서도 “최근에는 당 차원에서 민생경제문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민노당은 4월 임시국회를 맞아 민생경제문제에 매진할 계획을 밝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문제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정부의 비정규직 입법안 처리저지다. 지난 1일 민주노총이 이와 관련해 개시한 파업현장에 모습을 드러낸 단의원은 “이번 법안처리를 무슨 일이 있어도 저지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민노당은 또한 부유세 도입과 무상교육·무상의료·공공주거의 확충을 추진하며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아직도 노동자”

지난 2004년 삼성전자의 노조운동가 금품매수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던 단의원은 금배지를 단 지금도 천상 노동운동의 화신이었다. 단의원 자신도 “나는 아직도 내가 노동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동안 노동운동에 헌신하면서 ‘노동계의 대부’, ‘비타협적 투쟁의 대명사’라는 상반된 평가를 들어왔던 단의원이 처음부터 열렬한 투사였던 것은 아니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혹독한 가난을 경험했으며 결국 포항 동지상고를 중퇴해야만 했다. 이후 그는 각종 공장 등에서 일하며 대한민국의 부조리한 노동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단의원은 탁월한 행동력을 바탕으로 민주노총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노동계의 핵심적 인사로 급부상한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이 되자 주변에서는 ‘변절한 게 아니냐’는 의혹과 우려섞인 시선이 쏟아졌다. 그러나 단의원의 입장은 단호하다. “내가 기득권에 편입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항변이다. 그의 한결같은 모습은 국회의사당에서도 ‘편하다’는 이유로 고수하고 있는 점퍼차림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단의원은 “이런 옷차림 때문에 의원회관 출입을 제지당한 적도 있다”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사실 단의원이 국회에 입성한 것은 개인적 바람이라기보다는 당의 요구 때문이었다. 가족들도 “국회의원 출마로 그동안의 삶이 오해받을 수도 있다”며 극구 만류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출마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단의원은 “당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기도 했지만 국회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다른 의원들이 기피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굳이 선택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오는 2008년 총선 출마 계획도 아직까지는 없다고 한다. 또한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집권한 브라질 룰라 대통령과 비교된다는 말에는 쑥쓰러운 듯 대답을 아낀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국회의원으로서의 권위 대신 소탈함과 편안함이 물씬 느껴졌다.

민주노동당과 단병호, 그들은 달린다!

민노당은 현재 ‘2008년 제1야당, 2012년 집권’이라는 목표를 설정해놓고 있다. 단의원은 이에 대해 “가능성은 반반”이라면서도 회의적인 표정을 보였다. 그러나 “광역비례대표제 등의 변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총선에서 의석수는 늘어날 것으로 확신한다”며 “민노당의 원내진출이 단순히 비례대표를 확대한 제도적 구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원내 유일한 진보정당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민노당, 그 가능성을 단의원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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