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대 극회 '날개' 25회 정기공연 '불쏘시개'

무대 위에 세 사람이 앉아 있다. 문학을 끔찍이 사랑하는 교수와 그의 조교 다니엘, 교수의 제자이자 다니엘의 애인인 마리나는 귀를 기울여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화를 주고받는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세 사람. 그들은 책을 제외한 모든 물건들을 이미 난방을 위한 ‘불쏘시개’로 사용해버렸다. 이제 남은 건 교수의 서가에 꽂힌 책들뿐이다.

추위는 점점 그들을 엄습해오고 어느새 그들은 ‘어떤 책부터 불에 태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것 몇 가지’를 고르듯 신중한 태도로 교수는 책을 하나씩 난로에 집어넣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수와 마리나는 오직 추위를 피하기 위해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되고 다니엘과 교수의 갈등은 점점 증폭되어 간다. 전쟁과 추위로 인해 점점 내면이 황폐해져 가는 그들을 보며 어떤 관객은 경멸을, 어떤 관객은 동정심을 느낄 사이 무대를 밝히던 조명은 어두워지고 끊임없이 떠들던 세 사람은 적막 속으로 사라져 간다.

아멜리 노통(Amelie Nothomb)의 희곡 『불쏘시개』를 토대로 기획된 연극은 우리에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하나를 던지고 있다. 마리나는 교수에게 “과연 이 문장의 의미가 이 방의 온도를 1℃ 올리는 것보다 가치가 있느냐”고 묻고 교수는 “문학의 목적은 자넬 따뜻하게 해주는 게 아니야!”라고 소리친다. 인간의 삶 속에서의 책의 가치를 묻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당신이 간직하고 싶은 책은 무엇입니까?”라는 다니엘의 대사를 통해 연극은 또 한번 관객을 시험에 들게 한다. 지금은 책을 모두 불태워야만 하는 상황이고 그 중에서 어떤 책부터 태울 것인지. 허구적 상황이 만들어낸 간단명료한 이 의문은 책과 문학에 대한 도전으로 들린다.

교수가 끝내 선택한 책은 『천문대의 무도회』라는 작품이다. 그가 수업시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하찮은 작품’이라고 말했던 통속소설을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책이라고 말하는 교수. 무대 위에서 시종일관 “바로 그거야”라는 말을 연발하며 거만한 자세를 유지하는 그의 허위의식이 끝내 『천문대의 무도회』를 통해서 폭로되고 만다. 자신의 견해와 다른 생각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지식인의 표상은 교수에 대한 풍자로 적나라하게 표면 위로 드러나게 된다.

하지만 연극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는 교수라는 인물이 지니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서 책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한 고찰이다. 결국 더이상 태울 책이 없어서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책이 없어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인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비극적 결말은 역설적이게도 책의 영원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결국 그들이 책을 불쏘시개로 사용한 것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일이었던 것이다. 연극 『불쏘시개』는 전쟁 같이 급박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책을 하찮게 여기는 세태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다. 교수의 말대로 “불꽃은 잠시 살아있을 뿐이지만 책은 영원히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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