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풍속 곳곳에 숨어있는 '에로그로넌센스'

육체미 백퍼-센트라고 하는 여성 해수욕꾼들이 이따금 둘씩 셋씩 누구의 속을 태워보려고 그러는지 해수욕복이 찢어질 젖가슴과 엉덩이를 흔들면서 슬슬 앞으로 지나갈 때면 현기증이 나기도 하고 조금만 더 의지가 약하던지 수양이 부족하였다가는 순사한테 잡혀갈 행동만.

현대 황색잡지의 잡담코너에 실린 글이 아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인기 교양 월간지였던 『별건곤』에 「여름의 환락경-해수욕장의 에로그로」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이다. ‘에로 그로’를 통해 ‘넌센스’의 미학을 만들었다고 하는 근대의 새로운 경향 에로그로넌센스. 1920·30년대 우리나라에 물밀듯이 들어온 서구 문물에 대한 자극을 그대로 반영한 이 경향은 근대 풍속 곳곳에 숨어있다.

낯선 근대의 이질스러운 풍경화

외국의 신문명이 들어옴에 따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외래어에 대한 선망이 생기게 됐다. ‘에로티시즘(Eroticism)’의 ‘에로’와 ‘그로테스크(Grotesque)’의 ‘그로’, 그리고 ‘넌센스(Nonsense)’의 합성어인 에로그로넌센스는 그 명칭에서부터 ‘모던’의 냄새를 폴폴 풍긴다. 『남녀 도해 생식기 연구』, 『결혼 첫날밤의 지식』과 같은 값싼 서적들이 「동아일보」의 광고면을 버젓이 차지하는가 하면, 카페에서는 진한 연애가 이뤄진다. ‘에로’의 자극에 만족하지 못하는 대중들은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고 균형을 잃은 에로는 여장남자처럼 ‘그로’가 되고 만다. 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소래섭 강사는 “에로와 그로는 모두 대중들의 시각적 자극을 예민하게 건드린다”며 “1930년대 ‘에로 그로’의 열기는 조선에도 시각 중심적인 근대문화가 도래했다는 증거”라고 밝혔다.

한편, ‘에로 그로’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추종이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선망이라기보다는 나날이 발전해가는 현대과학에 대한 사람들의 역반응이라는 의견도 있다. 소강사는 “사람들은 시각 위주의 현대적 감각에 대해 매혹을 느낌과 동시에 현대성이 진행됨에 따라 감각에 피로함을 느끼게 되었다”며 “그들은 피로와 신경증을 치유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에로 그로’에 탐닉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해 에로그로넌센스 열풍의 이면을 확인시켜 줬다. 당시의 급변하는 정세와 불경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직시적인 면을 확인하기 힘든 ‘에로 그로’로 도피하게 했다. 한편으로 대중들은 현실의 불만과 내면의 우울을 달래주는 ‘에로 그로’에 탐닉함과 동시에 현실에 대한 환멸의 웃음을 표현할 또 하나의 배설구를 찾게 된다. 그것은 바로 따뜻한 해학적 웃음, 혹은 근대적 풍경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차가운 웃음인 ‘넌센스’인 것이다.

또 하나의 도피처, 넌센스

‘에로 그로’가 상류층이나 지식인들의 정서에 더 적합했다면, ‘넌센스’는 민중들의 대중적 정서에 더 들어맞았다. 상투를 틀고 양복을 입은 서글픈 퓨전의 형상에 민중들은 울음 대신 웃음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어떤 모던 보이는 모던 바람에 ‘머리를 지져서 넘실넘실 파문이 일게 하는 두발의 예술’을 시도하려다 머리카락을 인두로 지지다 그만 태워먹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도 하네.   - 「내가 실수한 이약이」, 『별건곤』 26호

 ‘에로 그로’ 속에 ‘넌센스’를 집어넣어 에로그로넌센스를 발현시키기도 하지만, 위와 같이 ‘에로 그로’를 물리치기 위해 ‘넌센스’를 이용한 ‘에로 그로 넌센스’도 존재한 것이다. 이경훈 교수(문과대·현대소설)는 “에로그로넌센스’는 근대적인 자극과 문명이 대중적으로 소비될 때 민중들이 새롭게 반응하는 하나의 형식으로도 읽을 수 있다”며 에로그로넌센스의 또 다른 의미를 밝힌다. 민중들은 급변하는 문물을 보며 씁쓸함과 동시에 소외감을 느끼고, 그것을 에로그로넌센스라는 새로운 경향으로 표출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자극들이 넘실넘실 춤추는 감각적 경향이 아니라 민중들의 세상 표현까지 숨어있는 하나의 한(恨)풀이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런 ‘넌센스’는 1930년대 문학인 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이나 김유정의 「금 따는 콩밭」과 같은 작품에서 잘 드러나기도 한다. 그들의 작품에서 우리는 ‘에로 그로’의 근대 풍속뿐만 아니라 그들이 표현하는 풍자와 해학의 방식도 읽을 수 있다. 소강사는 “이상, 채만식, 김유정, 김기림과 같은 문인들은 웃음이 담긴 넌센스의 언어를 통해 에로 그로에 탐닉하는 당대의 세태를 날카롭게 비판했다”고 말하며 당대 문학에서 읽을 수 있는 에로그로넌센스의 경향을 전한다.

정형외과(整刑外科)는여자의눈을찢어버리고형사(刑使)없이늙어빠진곡예상(曲藝象)의눈으로만들고만것이다여자는실컷웃어도또한웃지아니하여도웃는것이다.(중략) 천사의흥행(興行)은사람들의눈을끈다.사람들은천사의정조(貞操)의모습을지닌다하는원색사진판(原色寫眞版)의그림엽서를산다.

 - 이상 「흥행물천사(興行物天使)」

이 작품에서 이상은 당시의 흥행물들이 발산하는 에로그로넌센스를 에로그로넌센스의 언어로 비웃고자 하는 그의 욕망을 표현한다. 복제를 통해 대량생산되기 시작하는 여인의 도발적인 웃음은 성적 매혹만을 강력하게 발산하고 있는 웃음 아닌 웃음이다. 이상은 그러한 웃음을 비웃으며 카페와 흥행물의 이미지를 에로틱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변주하면서 웃음에 웃음으로 맞서는 것이다.

우리만의 ‘에로 그로 넌센스’

그러나 위와 같이 당대의 현실을 문학적으로 잘 승화시킨 작가들이 있는 반면, 에로그로넌센스’를 단순히 강렬한 상업적인 자극으로 추구한 사람들도 많았다. 앞서 언급한 『별건곤』과 같은 종류의 월간지, 『신동아』와 『삼천리』 역시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 ‘에로 그로’의 표면적인 환상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에로그로넌센스라는 개념 자체가 일본에서 건너 온 개념이고, 그 안에는 본래 인간의 고통과 삶의 방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에로 그로 넌센스’는 감각일 뿐이지 감성이 아니다”는 소설가 박경리씨의 말처럼 에로그로넌센스는 쾌락의 요소가 강하다. 에로틱한 육체나 기괴한 형상들을 바라보며 말장난하는 것에 그친다면 에로그로넌센스는 일본에서 건너 온 하나의 가볍기만 한 풍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말장난에 그치지 않고, 변화하고 있는 근대 사회를 해학적으로 포용하는 지혜, 그것이 있기에 에로그로넌센스는 아직도 근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뇌를 간지럽게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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