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
지난 3월 30일. 경기도 일산에 사는 양부현씨는 삼엄한 경비가 이뤄지고 있던 청와대앞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의 요구사항이 적힌 피켓을 온몸에 걸치고 1인시위를 하고 있었다.
오는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지금까지 장애인의 날에 맞춰 열린 시혜 중심의 일회성 행사들은 장애인 인권 향상에 실질적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84개 사회단체가 연대한 ‘4·20 장애인차별공동투쟁단(아래 장애인투쟁단)’은 지난 2002년부터 매년 3, 4월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아래 공동투쟁)’을 벌여오고 있다. 지난 3월 25일 장애인투쟁단은 공동투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 문제 해결과 관련해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그리고 대통령이 면담에 응하기를 촉구하며 그날부터 이곳에서 릴레이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1시간동안의 1인시위를 마친 양씨는 곧바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로 향했다. 인권위 대기실은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했고, 바닥은 이들의 담요와 도시락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장애인투쟁단은 지난 3월 24일부터 인권위 대기실을 점거·농성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대상인 장애인 문제를 정작 인권위가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농성은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지고 있다. 장애인투쟁단 조직위에서 일하는 윤기현씨는 “질서있는 점거농성이어서 적대적 관계는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인권위의 한 관계자도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이러한 농성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기존 극한 대립양상의 시위 문화가 보다 이성적이고 평화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현재 장애인투쟁단은 크게 3가지 영역, 11개 사안으로 구성된 정책요구안을 정부에 제출해놓은 상태다. 요구사안은 ▲장애인차별금지법·장애인교육지원법 등 장애인 차별철폐를 위한 법률제정 ▲이동권 및 편의시설 확충 등의 장애인 생활권 쟁취 ▲문화권·정보접근권 확보 등의 장애인의 사회적 권리 쟁취 등이다. 청와대 앞 1인시위, 인권위 점거농성 등은 이러한 요구사안 관철을 위한 수단인 것이다. 그러나 윤씨는 “정부측이 요구사안 수용에 희의적이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정부는 이들의 요구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특수학교에서 장애아를 가르치다가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장애인투쟁단 도경만 위원장은 “아직도 장애인은 ‘팔자다’라는 인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이번 장애인의 날에는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이번 공동투쟁이 연례행사의 차원을 넘어 장애인 인권 문제를 좀더 확실히 우리 사회에 주지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