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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초록] 지식 대통합의 불을 밝히다서울대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시대'
  • 최은영 기자
  • 승인 2005.03.28 00:00
  • 호수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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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불교를 결정짓는 한 단어가 있었으니 그것은 ‘통섭(通攝)’이다. 신라시대 승려 의상은 ‘화엄종’을 통해 한 마음(一心)으로 우주 만물을 통섭하고자 했다. 긴 세월이 지나 온갖 혼돈이 사회를 지배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선 지금, 학문에서의 통섭을 주장하고 나선 학자가 있다.

지난 22일, 공학원 대강당에서는 ‘통섭의 시대-지식의 대통합’을 주제로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의 학부대학 특강이 열렸다. 실험실 밖에서 발로 뛰며 연구하고,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현장형 동물학자로 널리 알려진 최교수의 강연을 듣기 위해 강연장은 학생들로 가득찼다. 가볍게 자신의 소개와 어린 시절 이야기로 강연을 시작한 최교수는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온 동물학과를 가게 돼 대학 생활 초반을 특이하게 보냈음을 얘기한다. 그는 자신의 전공수업보다 다른 전공수업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과외 활동에 많은 관심을 보여 동아리 활동도 9개나 했다. 그는 “여기저기에 관심을 보이고 다른 전공도 깊게 공부했던 학생시절이 지금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다양한 학문을 수학하는 것의 중요성을 내비쳤다. 전공 수업이 자신과 맞지 않아 고민을 했던 최교수의 인생은, 지난 1984년 그가 정글에 발을 디딘 순간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동물과 나 사이에 철책 없이 자연 속에 함께 하고 있다는 감흥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 최교수는 “그 때부터 자나 깨나 ‘생명’을 생각하고 연구하게 됐다”며 자신이 생물학에 정진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 후, 최교수는 “이제까지는 ‘생물학’이 별개로 존재했지만 최근의 경향은 ‘통합생물학’이라는 큰 틀을 통해 인문사회학문까지 담을 수 있는 생물학으로 변모하는 중”이라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생물학이 걸어온 길을 전한다. 이는 생명이 영위되는 것은 워낙 복잡한 현상이라 여러 분야가 한 데 모여 동시에 통섭적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는 생물학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서 ‘통섭’을 이루기 위한 추세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에게 조금 생소한 단어인 통섭은 ‘큰 줄기를 잡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학문의 경계를 넘어 모든 지식을 통합하자는 개념이다. 학문이 통섭돼야 할 필요성의 한 예로 현대의 고령화 문제를 든 최교수는 “이는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문제로, 우리나라가 고령사회가 될 날도 머지 않았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그는 “이는 노화생물학, 인간생태학, 사회학, 인구학, 정책학 분야에서 함께 연구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며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자기 전공분야에 다른 학문의 이야기를 잠깐 보태는 다학문적(multidisciplinary)연구를 넘어서서 자유롭게 학문의 분야를 넘나드는 범학문적(transdisciplinary)연구의 필요성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학생으로서 단순히 다른 학문을 ‘교양과목’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수학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조언한다.

강연이 끝나고, 학부대학장 민경찬 교수(이과대·위상수학/퍼지수학)는 이 강연장에 참석한 학생 대부분이 인문·사회계열 학생임을 확인한 뒤, “앞으로의 지도자들에게는 과학지식을 쌓는 작업도 필수적이다”며, “이 강연을 통해 학생들의 순수과학에 대한 열망도 높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최교수에게 관심이 많았다는 박민희양(이학계열·05)은 “고령화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생물학적으로 접근해 한 쪽으로만 치우친 것이 아닌 통합적인 학제적 접근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하며 “앞으로도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히딩크가 월드컵 대표팀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 수 있었던 까닭은 기초를 잘 다지고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선수를 많이 양성했기 때문이었다는 최교수. 그는 학문에 있어서도 어느 한 학문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전문지식을 가진 지식인이 가장 절실하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통섭의 시대’를 이끌어갈 주인공들이 자리를 함께 했기에 더욱 빛이 났던 강연장이었다.

최은영 기자  transe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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