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의 전통 정형시를 살펴보다

수백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 국문학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문학사적 위치에 서 있는 시조. 그리고 17자로 이루어진 매우 짧은 정형시인 일본의 하이쿠. 시조와 하이쿠는 각각 45자와 17자라는 비교적 짧은 문장 속에서 개성있는 의미를 담아냈다. 이런 두 나라의 정형시를 통해, 언어로 빚어지는 아름다움을 발견해보자.

현실에서의 이상을 노래하다

시조는 우리나라 고유의 정형시로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3장 6구 45자 안팎의 간결한 시형이다. 시조는 원래 짧은 노래라는 뜻의 ‘단가(短歌)’라고 불려져 내려오다가 조선시대 영조 때 단가에 곡조를 붙여 부르면서 이를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라 하여 ‘시절가조(時節歌調)’라 했고, 그 줄임말이 바로 시조다.

서울산업대 문예창작학과 신연우 교수는 한시현토체설, 향가기원설, 민요기원설 등의 시조의 기원설 중에 향가기원설에 좀 더 무게를 싣는다. 신교수는 “시조를 창안한 사람들은 향가가 갖는 삼단 구성을 수용하면서, 시의 화자가 다가서려는 대상을 절대적인 것에서 우리가 있는 곳으로 끌어내렸다”고 전한다. 덧붙여 그는 “시조가 그리는 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현실에서 가능한 이상적인 모습을 상정한다”고 말했다. 시조의 세계는 무질서한 현실 그대로가 아니라 조화로운 세계의 이상적인 모습을 담고 우리의 삶을 그 세계와 일치시켜 나가려는 소망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말의 아름다움

내 벗이 몇이냐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떠오르니 그것이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고산 윤선도의 「오우갯의 첫 수이다. 전체 여섯 수로 되어있는 ‘오우갗는 물, 바위, 소나무, 대나무, 달을 다섯 벗으로 하여, 첫 수 다음에 각각 그 자연물의 특징을 소재로 이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물의 영원성, 바위의 변하지 않음, 소나무의 푸르름, 대나무의 곧음, 달의 광명 등을 이미지화해 윤선도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관조의 경지를 이들 작품속에 잘 담아내고있다.

무엇보다도 「오우갯는 이전까지 한시의 영향으로 한자가 많이 사용되던 시가문학에 한자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려 시조를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작품이라는데 그 의의가 있다. 또한 많은 사대부들의 시조에서 보여지는 교훈적이거나 훈계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서정만을 표현했다.

시조는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매우 다양한 내용을 제약없이 담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임금에 대한 충성된 마음, 님에 대한 사랑의 정, 자기 수양, 생활의 멋 등을 시조 속에 녹여 내었다.

시조는 어느 문학 장르보다 언어의 조탁이 뛰어나야만 좋은 작품이 탄생될 수 있다. 절제된 언어의 미학에서 비롯되는 매력에는 우리 민족의 소박함과 풍류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

순간의 포착, 긴 여운

일본의 하이쿠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채꽃이여(5) 달은 동녘 지평에(7) 해는 서산에(5)”처럼 5-7-5의 형식으로 17자의 음절 속에서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표현한다. 마치 한 순간의 사진을 포착한 듯한 짧은 시구 속에 순간의 감정을 모두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시조 역시 짧은 문장으로 이뤄져 있지만 시조의 화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3장 속에서 전부 다 표현한다. 반면에 하이쿠는 순간의 모습만을 착상해 놓기 때문에 그 나머지는 독자의 몫이 되는 것이다.

하이쿠는 글자수로 보면 5-7-5로 이뤄져 있지만 실제로 발음할 때는 구마다 각각 한 박자씩 짧게 쉬어줌으로써 6-8-6의 음절처럼 들린다. 이러한 음절로 읽게 되면 문자로 썼을 때 보다 훨씬 더 운율적이고 부드럽게 들린다.

하이쿠는 일본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널리 지어지고 있다. 명지대 일문과 사이토 마사코 교수는 “1970년대 당시 일본은 경제적 성장과 함께 자국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하이쿠의 세계화를 위해 번역 작업에 힘썼다”며 일본이 자국 문화의 세계화에 국가적인 노력을 쏟아 부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현재 세계 각국에 하이쿠 동호회가 있을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이쿠를 짓고 있는 것이다.

하이쿠의 특징은 시구 속에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표현이 직접적으로 ‘봄’, ‘여름’등의 식이 아니라 예를 들어 ‘개구리’라고 한다면 개구리는 경칩(驚蟄)을 지나야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봄을 의미하는 것이고, ‘귀뚜라미’같은 경우에는 자연스레 ‘가을’이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하이쿠는 순간의 느낌을 회화적인 표현을 써서 나타낸다. 사이토 교수는 하이쿠의 매력을 “실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을 통한 일상에서의 새로운 발견”이라고 전했다.

こひびとを持(も)ちあぐむらし鬪魚(とうぎょ)のへん

남자친구를 기다리다 지쳤나, 열대어 주변

히노 소오죠오의 하이쿠다. 젊은 여자가 열대어가 헤엄치는 수족관 부근에 서있다. 약속한 남자친구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남자친구는 오지않고 지친 듯 보인다. 20세기 초 일본 내에서는 신기하기만 한 열대어를 보고도 관심없어 하는 걸 보니 초조하고 애가 타는 모양이라 추측하고 있다. 당시의 문화를 소재로 하이쿠의 영역을 다각적으로 확대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사이토 교수는 “일본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의 교재에는 하이쿠 작법에 대한 내용이 빠지지 않고 실려있다”고 전한다. 그만큼 하이쿠는 초보자들도 쉽게 쓸 수 있고 외국인들에게 자국의 전통 문화를 쉽게 접하게 함으로써 일본에 좀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꽃은 벚꽃, 시는 하이쿠

흔히 일본인의 정서를 벚꽃에 많이 비유한다. 벚꽃은 순식간에 피어올라 화사함을 유지하다가 어느 순간에 깨끗하게 다 져버리고 만다. 이는 어떤 일에 직면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가진 무사처럼 벚꽃이 주저 없이 순간적으로 지는 데 그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하이쿠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다른 군더더기 말없이 꼭 전달하고자하는 단어만을 순간을 위해 선택해 표현하는 것이다.

이어서 사이토 교수는 “일본의 대중가요나 시에서는 5-7-5의 형식이 은연중에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의식해서 그 운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대중들이 좋아하는 운율을 선택하다 보니 5-7-5형식을 따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일본인들의 삶에서는 하이쿠의 정서와 형식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우리의 언어를 아름답게 살린 시조와 한 순간의 장면을 포착해 기발함으로 메세지를 던지는 하이쿠.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한자가 아닌 각국의 모국어를 아름답게 사용하여 표현한 것에 그 가치가 있다. 비록 그 언어와 문화적 배경은 다르지만 수 백 년의 역사를 지닌 한일 양국의 정형시 속에서는 짧은 언어에서 나오는 미학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양국의 민족 정서를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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