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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산책] 직설적인 반어들의 도발적인 모험극<적의 화장법>과 <살인자의 건강법>의 아멜리 노통
  • 최은영 기자
  • 승인 2005.03.28 00:00
  • 호수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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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살인자가 어떻게 건강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적을 화장시킨다고? 로베르씨의 인명사전엔 누가 있는거지? 『살인자의 건강법』, 『적의 화장법』,『로베르씨 인명사전』과 같은 독특한 제목들로 책꽂이에서부터 우리를 사로잡는 작가가 있다.

벨기에 출신의 젊은 작가 아멜리 노통(Amelie Nothomb)이 독보적인 문학행로를 걷고 있다. 지난 1992년 『살인자의 건강법』 출간을 시작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 노통은 데뷔작으로 프랑스 문단을 발칵 뒤집은 뒤, 매년 한 작품씩 발표해 작품마다 ‘노통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한국에도 10여권의 책이 번역돼 한국 독자들의 눈길까지 붙잡고 있다. 노통의 작품은 길이가 대부분 짧은 편이다. 짧은 작품, 얇은 책의 미학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녀의 작품들은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한 순간 책을 내려놓기 어렵게 한다. 사전 구석에나 있을 듯 익숙하진 않지만 문장에 딱 들어맞는 단어들과 호흡이 짧은 문장, 그리고 깔끔하게 정제된 유별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문학의 허위에 던지는 칼날

-사이비 독자는 잠수복을 갖춰 입고, 유혈이 낭자한 내 문장들 사이를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유유히 지나가기 마련이거든. 가끔씩 탄성을 지르기도 할 거요.

-독자들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십니까?

-내가 바라는 건 책을 읽되, 인간 개구리 복장도 하지 말고 독서의 철창 뒤에 숨지도 말고 예방 접종도 하지 말고 읽으라는 거요.

노통은 허위에 갇혀버린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쏟아내고 있다. 대문호 프레텍스타 탸수와 기자들과의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된 데뷔작 『살인자의 건강법』은 우리에게 ‘당신에게 소설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독설로 가득한 은유와 차가운 풍자로 독자들의 가슴까지 서늘하게 하는 이 작품은 허위에 갇힌 독서를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의문도 던진다. 작가가 손으로 글을 쓰면서 쾌감을 느끼며 허위에서 벗어난다면 독자에게 있어서 쾌감의 중추는 무엇인가? 그 쾌감의 중추를 통해 문법에 사로잡힌 나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가? 독자가 스스로의 허위에 끊임없이 살인충동을 느끼며 책을 읽는 것, 노통은 자신의 작품을 그렇게 읽어주길 바랬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에 대한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희곡 『불쏘시개』에서는 ‘세상의 책을 태워야 한다면 당신은 무슨 책부터 태울 것인가?’라는 기상천외한 질문으로 독자를 난감하게 한다. 인간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여겼던 책은 추위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다만 두께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뿐이다. 살기 위해서는 책을 태워버려야 하지만, 책을 태우고 나서는 인간답게 살 수 없다는 책의 역설적 가치를 단 세 명의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타자보다 낯선 자아와의 대화

독자들이 책들을 불쏘시개로 다 태워버리기도 전에 노통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기발하게 던진다. ‘다양성’이라는 표제 아래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 사람들은 각자 갇힌 세계에서 살다보니 내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고 있다. 다중인격(해리성정체)과 같은 병이 심상치 않게 등장하고 있으며, 타자와의 소통은 현대인을 힘겹게 하고 있다. 노통은 『적의 화장법』에서 나의 ‘적’을 밝혀내기 위해 끊임없이 대화한다. 전체가 대화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공항에서 책을 읽으려는 제롬 앙귀스트에게 낯선 인물 텍스토르 텍셀이 말을 걸어오는 것에서 시작한다. 치밀하게 짜여진 둘의 대화는 강간, 살인과 같은 끔찍한 얘기로 계속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다가오는 책의 결말은 독자에게 지옥은 타자가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 말한다.

아마 적이란 자신의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지금 적이 옆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는 당신 안에 당신의 머리와 뱃 속에서 책 읽는 것을 방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노통이 『살인자의 건강법』에서 인터뷰 형식의 서사를 자유자재로 끌고 나가는 기발함을 보여줬다면 『적의 화장법』에서는 빈틈없는 치밀함과 지적인 기괴함을 보여준다. 질주하는 대화의 중계와 독특한 서사구조는 이야기를 최대한 단순화시키면서도 정체성 찾기에 대해 냉정하게 묻는다. 나에게 침입하는 낯선 타자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인지, 나도 모르는 자아가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인지. 작가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녀의 작품을 읽고나서 ‘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견해를 한 번쯤 의심하게 된다.

유별난 경험, 무사태평한 반어

이렇게나 잔인한 유머로 독자들이 운동경기 중계를 보듯 호흡이 끊어지지 않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특이했던 경험에 관한 작품들도 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방글라데시, 보르네오, 미국 등지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작품에서도 나타낸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보낸 자신의 유년기와 일본회사에서의 뼈아픈 기억이 작품에 숨어있다. 자전적 소설인 『두려움과 떨림』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특이한 주제를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 그녀는 그녀만의 섬뜩한 문체와 풍자는 살린 채, 일본 사회 혹은 구조의 경직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보여주고 있다.

과거 일본 황실의 의전에, 천황을 알현할 때는 ‘두려움과 떨림’의 심정을 느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사무라이 영화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모습에, 사무라이들이 초인적인 숭배의 감정으로 목소리가 녹아들면서 자신의 두목을 배알하는 모습에 딱 부합하는 이 표현을 늘 끔찍이도 좋아했다.

벨기에인으로서 일본회사에 들어가 어리숙하게 일을 하며 유머러스하게 구조적 문제점을 토로하는 이 작품은 그러한 역설을 통해 현실을 현실보다 더 치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특유의 경험을 기상천외한 서사구조에 담그는 그녀의 솜씨에 독자들은 부러움과 동시에 ‘노통’이라는 또 하나의 우상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그녀의 어린시절의 평범하지 않은 경험들은 유년기의 자아중심적 낙원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들에 나타나기도 한다.

노통은 스스로를 신념에 의한 염세주의자라고 밝힌다. 그녀는 우화와 같은 평온한 말투로 글을 쓰기도 하고, ‘실수를 무릅쓰고 질문을 드리는 겁니다만’이라고 묻는 기자의 말에 ‘실수를 무릅쓸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라’며 예기치 않은 순간 쏘아 붙이기도 한다. 이런 평화로우면서도 잔혹한 묘사는 염세의 절정에는 경쾌함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일 년에 한 편씩은 꼭 작품을 발표하고, 하루에 네 시간씩 글쓰기를 한다는 글쓰기광(狂) 노통. ‘4월의 감미로움은 일종의 도발’이듯 그녀 작품에 목졸리는 쾌감은 당돌한 도발이다.

최은영 기자  transe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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