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특집
1985. 5. 29, 헤이젤에선 무슨 일이?
  • 정진환 기자
  • 승인 2005.03.28 00:00
  • 호수 1513
  • 댓글 0

2004~2005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 리버풀(잉글랜드)과 유벤투스(이탈리아)가 격돌하게 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이유는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두 명가간의 대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바로 20년전 양팀간에 일어난 비극적 사건 때문이다.

1985년 5월 29일 벨기에의 헤이젤. 이날은 리버풀과 유벤투스 간의 챔피언스 리그 전신인 유럽컵 결승전이 있던 날이었다. 그러나 축제여야 할 이날은 축구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날로 기록되고 말았다. 경기전 양측 팬들의 충돌 및 경기장 칸막이 붕괴에 따른 압사로 39명이 죽고 454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리버풀 팬 레스 로손의 말이다.

“양팀은 이전부터 UEFA에 헤이젤은 결승전 장소로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도 있고 누 캄프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이 낡은 육상경기장에서 유럽컵 결승전이 치뤄져야 했는가? 이러한 UEFA의 결정은 팬들의 안전에 치명적인 위험을 이미 내포하고 있었던 셈이다.”

또다른 리버풀 팬 필 닐은 이렇게 덧붙인다.

“문제는 양팀 팬을 갈라놓는 중립지대, 소위 X존이었다. 벨기에 현지 팬들을 위해 마련한 이 구역에 티켓을 구하지 못한 양팀 팬들이 들어와 섞이게 되었다. 그 결과는? 헤이젤의 참사는 UEFA와 벨기에 당국의 무능함에서 비롯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서 경기 전부터 극성스럽기로 유명했던 양팀 팬들의 격돌이 시작됐다. 이들은 몽둥이를 들고 오물을 투척하며 서로를 공격했고 경찰은 리버풀 팬을 훌리건으로 간주, 무조건 두들겨 팸으로써 상황 악화에 일조했다. 그러던 순간 숫자가 적어 시종일관 밀리던 리버풀 팬이 기습적인 반격을 취하자 이에 놀란 유벤투스 팬들이 스탠드 쪽으로 한꺼번에 밀리면서 스탠드가 붕괴했다. 출구가 없는 상태에서 유벤투스쪽 스탠드로 겁에 질린 사람들이 일시에 스탠드로 몰아닥치는 바람에 39명의 팬들이 압사했다. 38명은 이탈리아인이었고 1명은 벨기에인이었다.

한편 그 시간에 리버풀의 선수들은 라커룸 안에 갇혀 있었다. 경기장 안에서 어떤 큰 사고가 있었고 사람들이 죽은 것만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당시 리버풀의 에이스였던 케니 달글리쉬는 이렇게 회상한다.

“다음날 아침이 되서야 우리 선수들은 경기장 안에서 정화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비규환 속에서 주심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바로 결승전의 속개였다. 그는 “경기를 취소했다면 관중의 소요 사태는 더욱 심각해졌을 것이다”며 자신의 결정을 변호한다. 그리고 그 결정은 20년이 흐른 지금 옳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속개된 경기에서 유벤투스가 리버풀을 1:0으로 물리치며 유럽컵 첫 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그러나 아무도 기뻐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후 유럽의 모든 축구경기장은 입석이 없어지고 칸막이가 제거됐다. 또한 좥경기장폭력에관한특별법좦이 제정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유럽축구는 90년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리버풀에게는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1989년 4월 15일 노팅험 포레스트와의 리그 경기에서 또 한번의 경기장 사고로 95명이 죽고 170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이후 리버풀을 비롯한 잉글랜드 클럽은 향후 5년간 유럽대항전 출전을 금지당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2005년, 다시 한번 챔피언스 리그에서 격돌하게 된 양팀 관계자들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유벤투스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은 “당시 일을 기억한다”면서 “다시는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편 릭 페리 리버풀 단장은 “양 클럽은 헤이젤의 참사 이후 이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유벤투스가 강팀이라고 해서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리버풀의 승리를 자신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세리에A 공동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유벤투스의 근소한 우위를 점치고 있다. 유벤투스는 챔피언스 리그 예선을 조1위로 통과하고, 16강에서 ‘지구방위대’ 레알 마드리드를 격파하는 등 최고의 전력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최고의 강점은 바로 파비오 카나바로, 지안루카 잠브로타, 릴리앙 튀랑 등이 버티고 있는 탄탄한 수비진이다. 또한 ‘거미손’ 지안루이지 부폰이 자리잡고 있는 골문도 든든하다. 그러나 스트라이커진은 믿음직스럽지만은 않다. ‘핀투리키오’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가 올시즌 내내 심각한 부진에 시달리고 있으며 다비드 트레제게는 비록 레알 마드리드와의 16강 2차전에서 멋진 골을 작렬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부상에서 아직 완벽히 회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올시즌 프리미어리그 5위에 머무르고 있는 리버풀은 심한 기복과 주전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악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지브릴 시세, 닐 멜러, 해리 키웰, 플로렌트 시나마-퐁골레, 크리스 커크랜드가 모두 ‘시즌 아웃’이며 스티븐 워녹, 디트마르 하만 등도 가벼운 부상을 입은 상황이다. 또한 지난 1월 레알 마드리드(아래 레알)에서 영입한 ‘머리의 제왕’ 페르난도 모리엔테스는 지난 2004년 8월 이미 레알 소속으로 챔피언스 리그 출전 경력이 있어 규정상 출전이 불가능하다.

이래저래 관심을 끄는 이번 8강 1차전은 4월 5일 리버풀의 홈 앤필드에서, 2차전은 4월 13일 유벤투스의 홈 델레 알피에서 치뤄진다. 양팀이 지난 세월의 상처를 극복하고 멋진 한판 승부를 펼쳐줄 것을 기대한다.

정진환 기자  anelka@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진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