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갑 사진전 '눈, 비, 안개 그리고 바람 환상곡'

혼탁한 매연 냄새를 맡으며 차들로 꽉 막힌 광화문대로를 지나 세종문화회관에 도착하면 확트인 공간을 마주할 수 있다. 잔잔한 멜로디와 함께 자연 그대로를 느낄 수 있는 곳. 바로 ‘김영갑 사진전’이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사진은 온통 제주도의 풍경들을 담고 있다. 그의 사진 속에서 사람이 만들어낸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진작가 김영갑씨는 ‘눈, 비, 안개, 그리고 바람 환상곡’이란 제목으로 파아란 하늘에서부터 황금빛 억새들, 깊이가 느껴지는 넓은 `바다판까지 사진에 담아낸다. 이처럼 자연스런 풍경들이 새롭고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동안 우리가 높다란 빌딩들의 회색빛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생동감’이 묻어난다. 넓은 풀밭 속에서 금방이라도 풀벌레가 뛰쳐나올 것만 같고, 흔들리는 풀들을 보면 시원한 산들바람이 코를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생동감과 함께 넓은 바다의 파도치는 모습을 미세하게 잡아낸 그의 사진 기술은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정지된 그 순간을 찍어야 하는 사진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사진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생동감을 그는 모든 작품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진전에서 특히 주목해서 봐야 하는 작품들은 바로 ‘구름 시리즈’다. ‘구름이 내게 가져다 준 행복’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처음 공개되는 구름 시리즈는 같은 장소에서의 하늘과 구름이 얼마나 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한없이 맑은 느낌의 하늘을 지나치면 잔뜩 심통을 부리며 휙휙 날아가는 구름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노을로 붉게 타며 쓸쓸히 지나가는 구름들 차례다. 보랏빛 구름 사이로 보이는 한줄기 희망의 빛까지, 십여점이 넘는 사진들이 제각기 다른 빛깔을 내고 있다.

사진작가 김영갑씨의 작품은 사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채로운 색깔이 칠해진 자연을 담은 사진들은 간혹 ‘그림’이라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관객들의 마음을 확 트이게 해준 사진작가 김영갑씨. 하지만 그 아름다움 속에는 작가의 아픔이 투영돼 있다. 그는 5년 전 ‘루게릭병’이라는 불치병을 선고받고 투병생활 중이다. 조금만 움직여도 근육에 통증이 느껴지는, ‘웃어도 아픈’ 병이기에 더 이상 그는 셔터를 누를 힘조차 없다. 자신의 작품이 그 자체로 평가받길 원한다는 그의 바람대로 작가의 사정을 모르고 작품 자체만 봐서는 그의 아픔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그의 사진 속에서 억새는 숨쉬기도 버거운 바람에도 몸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꿋꿋히 서있다. 끝까지 바람과 맞서는 억새풀처럼, 잔뜩 낀 구름 속에서 흘러나오는 빛처럼 스무해 동안의 그의 노력은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관객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과 구름을 그리고 바람을 사랑하는 자연 그대로의 사진작가 김영갑. 그가 담아낸 아름다운 자연빛은 잠시나마 도시의 회색빛을 잊게 해준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신관 1,2 전시실에서 오는 4월 5일까지.(문의: ☎511-8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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