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모든 종목에서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명승부를 연출하는 ‘연고전’! 그 중에서도 연세인들이 표를 구하기 위해 가장 동분서주하는 종목이 바로 농구다. 1965년 이후 열린 정기 연고전에서 20승 4무 12패의 성적을 거두며 승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연세대학교 농구부, 이러한 연세 농구를 대학 최강의 위치에 올려 놓은 이가 바로 86년부터 2002년까지 농구부를 이끌었던 최희암 감독이다. 오랫동안 우리대학교에 몸 담았지만 일반 학생들과의 만남의 기회가 적었기에 궁금한 것도 많은 그를 만나보았다.
1. 감독님께서는 농구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농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그거 너무 철학적인 얘기인데^^; 농구는 인생을 사는데 하나의 교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상 생활에서도 크고 작은 위기가 많은데 농구도 마찬가지로 경기 중에 위기 상황이 수도 없이 생겨요. 그럴 때 좌절하지 않고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한데 농구라는 스포츠를 즐기면서 인생에서 겪게 될 위기를 관리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연습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힘, 이러한 것들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2. 감독님이 대학에서 선수 생활 하실 때와 지금과 환경이나 선수들은 어떻게 다른가요?
많이 다르죠. 농구가 지금처럼 인기가 많았던 것도 아니고. 많은 관심 속에 운동을 하진 못했어요. 지금이야 학교에서 운동만 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마련해 주지만 그땐 아니었어요. 겨울방학 중에 아침 훈련하러 학교에 올 때는 선수들이 백양로에 쌓인 눈을 직접 치우면서 들어올 정도였으니까......지금은 식당에서 라면이나 짬뽕 국물 따로 안 팔죠? 그때는 풍족하지 않던 때라 선수들이 직접 밥을 지어서 그 국물을 사다가 같이 먹곤 했어요. 여러분은 상상이 잘 안될 거예요.^^;
선수들을 보자면 그때 선수들이 지금보다 훨씬 어른스러웠어요. 부모님들이 요즘처럼 신경을 써주시지 않았거든요. 제가 우리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병원에 입원했을 때를 빼면 부모님이 한 번도 학교에 오신 적이 없을 정도였죠. 과거 선수들은 가끔 행동이나 선택에 있어서 위험한 점도 있었지만 독립성이 강했어요. 그에 비하면 지금 선수들은 귀하게 크다 보니까 부모님께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신 바보스러운 구석이 있을 정도로 착하기도 하죠. 그런 게 다른 점인 거 같아요.
3. 우리대학교 감독을 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이신가요?
매 순간 매 순간이 다 기억에 남지만 특별한 기억이 몇 개 있어요. 우선 제가 1986년에 처음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그 해 연고전 경기 중에 선수들 사이에 트러블이 생기는 바람에 흥분한 관중들이 마시던 우유를 코트에 던진 일이 있었어요. 근데 이걸 기름걸레로 닦는 바람에 우유랑 기름이 서로 엉켜서 도저히 시합을 진행할 수가 없어 중단되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실제로 그 해 농구 전적은 21:25 고대 승리로 기록되어 있다.)
또 94년에 농구대잔치 우승할 때가 기억에 남는데, 그때 마지막 경기가 끝났는데도 관중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함께 ‘마지막 승부’라는 드라마 주제가를 불러줬어요. 그때 굉장히 감독으로서 감동적이었죠. 그런 순간들이 기억에 가장 남네요.
4. 농구 외에 다른 취미가 있으신가요? 또 가족들과 시간을 자주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취미는 없지만 ‘잡기’를 즐겨 해요. 장기나 마작 같은 거. 또 틈틈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도 또 다른 취미에요. 책 한 권을 가족들이 같이 돌려보곤 하죠. 아이들 어릴 때는 가족끼리 같이 여행도 많이 다니고 그랬는데 요즘은 아이들도 다 크고 바빠서 주로 집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5. 감독과 해설위원을 비교한다면?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감독과 해설 위원의 차이는 책임의 유무에요. 감독은 경기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해설은 결과에 따라 말을 하면 되니까 해설이 더 편하긴 하죠. 그래도 감독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프로에서 절반의 실패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처음이라 너무 성급하게 모든 것을 하다 보니까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거 같아요. 한번 시작했으면 마무리를 지어 봐야 하지 않겠어요? 프로무대에 다시 도전해 보는 게 목표에요.
6. 연세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일반 학생들이 우리 선수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더 나아가서 친구도 되어주면 좋고. 농구 선수들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세상을 보는 시각이라든지 미래에 대한 비전 같은 것이 서로 굉장히 비슷해요. 그래서 인생의 지혜라 할까...... 그런 것이 좀 부족하죠. 그래서 여러분 같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도움을 준다면 선수들한테 큰 도움이 될 거에요.
경기장에 가서 응원해달라는 건 무리한 부탁이겠지만 공강 시간에 의미 없는 오락으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학교 체육관에라도 와서 선수들을
자주 만나면서 서로 얘기도 하고, 운동도 같이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또 교양수업에서라도 만나면 ‘운동 선수’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말고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 선수들이 지혜 같은 것을 기를 수 있게 도움을 줬으면 해요. 말로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행동으로 관심을 보여달라는 것, 그것이
내가 연세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입니다.
코트에서 카리스마를 가지고 선수들을 지도할 때와는 또 다른 세심하고 자상한 모습을 보여준 최희암 감독.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농구와 우리대학교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본 체육관의 모습이 전보다 더 친숙하고 정답게 느껴졌다.
/이승호, 조진옥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