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와 살로메

“나는 그대를 통해서 세상을 봅니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이 아니라 당신만을, 오로지 당신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살짝 다가가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여 보는 건 어떨까. 아마 그때부터 당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질 것이다.

자신을 찾아온 여자친구를 위해 장미꽃을 꺾다가 장미가시에 찔려 패혈증으로 생을 마감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7). 그리고 수많은 남성의 구애를 거절했던 문필가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1861~1937). 둘은 14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영혼을 통해 평생의 인연을 맺었다.

1897년 처음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이미 살로메는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성숙한 여성이었고, 릴케는 막 세상에 발을 내딛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들의 첫 만남은 단순한 애정의 관계에 지나지 않았으나, 정신과 영혼을 나누는 평생의 벗으로 지낸다. 뛰어난 예술적 감각과 풍부한 인생 경험을 가진 살로메는 젊은 릴케의 마음을 빼앗아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살로메는 릴케의 삶에 있어서 연인이자 어머니 같은 정신적 지주가 된다.

릴케는 살로메로부터 작품세계의 확장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녀와 함께한 러시아 여행을 통해 유럽 세계와는 다른 깊은 신앙심과 소박함, 자연 친화성, 깊은 우수와 같은 러시아 민중들의 삶을 발견했다. 김용민 교수(문과대·독문학)는 “그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신비주의, 영혼의 울림, 슬라브적인 표현은 살로메와 함께한 러시아 여행에서 비롯됐다”며 살로메와 함께한 여행이 많은 영향을 미쳤음을 설명했다.

지성을 겸비한 매력적인 여인과의 사랑 속에서 릴케는 자신의 과도한 감정 분출이나 침체감을 누그러뜨릴 줄 알게 됐다. 그리고 릴케는 문학적인 미숙함에서 탈피하여 자연을 심미적으로 인식할 줄 아는 시인이 됐다. 또한 살로메와의 만남은 릴케의 여인관, 자연관, 인생관 등을 조성하고 그리움, 동경이라는 의미를 깨닫는 데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릴케는 살로메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녀를 위한 시를 쓰고, 구애를 아끼지 않았다. 비록 살로메는 진정한 결혼이란 육체적인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릴케만은 예외였다. 그녀는 릴케를 ‘육체와 인간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하나로 구현된 존재’라고 여기며 남다른 감정을 가졌기에 릴케와 처음으로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된다.

릴케는 살로메를 영혼과 육체의 이상적인 동반자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살로메는 릴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육체적 욕구에 굴복할 수 없었다. 이에 그녀는 우정과 육체적 사랑을 구별하면서 학문적 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건국대 독문과 조두환 교수는 “살로메는 릴케와의 생활을 기술한 저서들 속에서 그와의 만남을 자기 생에 대한 반추의 기회로 삼아 성숙의 경지로 들어서게 됐다”며 그녀의 성적 에너지가 예술로 승화됨을 얘기했다.

14년의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만남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를 “영혼의 울림이 같았기 때문”이라고 표현하는 김교수의 말처럼 살로메와 릴케는 육체를 넘어 정신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4년 후 둘은 각자의 길을 걸어갔지만 작품과 편지를 통해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뤄지지 않은 사랑이었지만 영혼의 교감과 릴케의 살로메를 향한 시들은 사랑에 무감각해진 우리 시대에 축복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하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