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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샘] 권력보다 아름다운 매력의 스케치지배층 여성의 초상화
  • 최은영 기자
  • 승인 2005.03.21 00:00
  • 호수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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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 초상화의 모델은 자신의 초상화를 본 후,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반해버린 나르시스처럼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아름다운 얼굴과 동시에 권력까지 숨겨진 초상화들이 미술사 곳곳에서 숨쉬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지배층 여성의 초상화이다. 모델 자신뿐만 아니라 현대의 남녀노소까지 반해버리게 하는 지배층 여성의 초상화들이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권력과 매력 중 어떤 것이 더 아름다우냐고.

서양미술사에서 초상화가 본격적인 핵심장르로 등장한 것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부터다. 중세시대에 그려진 수많은 신의 모습 대신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람의 모습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왕뿐만 아니라 귀족, 상인, 평민들까지 모두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 막강한 권력과 거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곁들인 지배층 여성의 초상화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즐거움을 선사한다. 권력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피사넬로의 「지네브라 데스테」

르네상스 초상화의 문을 연 피사넬로(1395?~1455)의 「지네브라 데스테」를 보자. 이탈리아 페라라 공국의 공주인 지네브라 데스테(1421~1440)를 그린 이 초상화는 그녀의 옆면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양여대 일러스트레이션과 고종희 교수는 “초기의 초상화라 얼굴에 비해 몸이 빈약하고 가슴, 팔 등의 비례가 잘 맞지 않지만 여인의 옆면 초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옷의 문양, 가슴의 띠, 배경 등은 가문을 상징하는 동시에 사랑과 결혼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지네브라 데스테」의 배경을 설명한다. 아직 초상화의 사실적인 묘사가 서투른 시기, 옆면 초상화는 그리기 쉽다는 장점과 동시에 대상을 이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화가와 모델 모두에게 선호되었다. 이는 로마 제국 화폐의 황제의 옆모습 초상화만큼이나 권력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자세하게 묘사된 값비싼 옷과 나비들의 날개짓은 아름다움과 동시에 시간이 멈춰진 느낌을 준다. 말라테스타와의 결혼을 앞두고 가장 아름다운 상태로 멈춰진 지네브라를 그린 이 초상화에서는 르네상스 초기 미숙함이 주는 매력과 옆모습의 권력이 그대로 나타난다.

다 빈치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르네상스 초상화 사상 처음으로 그림에 팔과 손을 등장시킨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에 이르러서 여성의 초상화는 미의 절정에 다다른다. 다 빈치가 남긴 많은 초상화 중 하나인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은 「모나리자」 이전에 그려진 작품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체칠리아 갈레라니(1467~미상)는 밀라노 대사의 딸이자 밀라노의 군주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의 정부(情婦)였던 절세미인으로 유명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청순한 체칠리아의 얼굴과 정반대되는 도발적인 얼굴의 흰 담비이다. 상명대 예술대학 홍진경 강사는 “이 담비의 흰색털은 순수를 상징하는 동시에 밀라노 공국을 통치하는 가문의 상징으로 체칠리아가 루도비코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여인이란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홍강사는 “담비의 앞발이 여성이 지녀야할 성도덕 관념에 대한 남성의 양면적 요구라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며 “순결한 체칠리아 역시 사랑을 받을 때는 자신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밝힌다. 「모나리자」의 명성에 가려진 이 작품은 「모나리자」만큼이나 매혹적인 시선과 미묘한 표정을 표현하고 있고, 더불어 권력가의 은밀한 애정사를 드러낸다.

라 투르의 「퐁파두르 부인」

인간의 숨결이 고동치는 르네상스 시기를 지나 웅장한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 로코코 시대에 다다른다.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은 바로크 양식에서 파생된 로코코 양식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고 이는 바로크 양식의 남성미와 달리 섬세한 여성미에 초점을 맞췄다. 경쾌하고 감각적인 풍조가 유행했던 이 시기의 초상화들은 화사하기 그지없다. 프랑스의 궁정화가 모르스 켕탱 드 라 투르(1704~1788)의 「퐁파두르 부인」은 고고한 품격에 교양미를 두루 갖춰 유럽의 가장 이상적인 귀부인상으로 꼽히고 있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1721~1764)은 부유했던 가정에서 태어난 덕에 문학과 미술에 두루 교양을 지니고 있었고 당시 위험사상으로 간주된 계몽철학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로코코의 선두주자였던 그녀답게 이 작품에는 그녀의 취향이 드러나 있는데 화려한 옷과 두발, 실내 장식, 많은 책, 바닥의 판화 포트폴리오, 손에 들려진 악보까지 모든 것이 그녀의 품격을 반영한다. 정식왕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일에도 관여한 그녀의 위엄과 지성이 파스텔 그림 곳곳에서 묻어난다. 변덕스러운 루이 15세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날마다 다른 의상과 분위기로 치장했다고 하는 퐁파두르 부인의 화려함은 아직까지도 보는 사람들의 넋을 잃게 한다.

여성이 배제돼 왔던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을 소재로 한 미술작품 만큼은 고대의 비너스상에서부터 시작하여 계속 나타나고 있다. 고교수는 “고대부터 시작된 여성과 여체에 대한 관심이 권력가의 부인과 딸 등의 지배층 여성초상을 그리면서 극대화된 것이다”며 “이로써 미적인 부분과 동시에 도덕적인 덕목까지 강조됐다”고 지배층 여성 초상화의 의의를 설명한다. 화가의 경우, 권력자를 그리는 명예를 가짐과 동시에 고급화된 아름다움을 그릴 수 있기 때문에 지배층 여성을 모델로 많이 택했다. 처음에는 남편이나 특정가문의 의뢰로만 제작됐던 여인들의 초상화지만, 르네상스 시대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권력과 재력을 지닌 여성들이 명성 높은 화가들에게 직접 초상화를 주문하기도 했다. 자신의 매력과 아름다운 장신구들을 그림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간접적인 권력을 드러낸 여인들. 자신들이 ‘실제’ 권력을 잡을 수 없는 시대의 상황이 여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권세에 버림받고, 독살당하는 풍파를 겪으면서도 순간의 권세를 화지에 기록하고 싶었던 여인들의 매력이 천년을 가로지르고 있다.

최은영 기자  transe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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