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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설 곳 없는 삼일의 버려진 요구
  • 강동철 기자
  • 승인 2005.03.21 00:00
  • 호수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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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빈민층 삶의 터전을 대표하는 곳이던 종로구 창신동의 삼일아파트. 그러나 현재 삼일아파트는 도심속에 버려진 빈민의 섬 그 자체다. 회색빛 구름이 잔뜩 낀 날, 이른 아침 찾아간 삼일아파트는 사람이 전혀 살 것 같지 않는 폐허의 모습으로 간신히 서있었다. 지난 2004년부터 시행된 종로구청의 철거 계획에 의해 대부분의 거주민들이 떠나고 이제는 고작 40여세대만이 남아서 아파트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삼일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대책회의를 하고 있던 ‘빈민해방철거민연합’ 정아무개 선전국장은 “지난 8일에는 구청측이 사람이 살지 않는 7,8동을 강제로 철거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아있는 주민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철거를 강행하려는 구청측의 행태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어 정국장은 “본래는 철거민들을 위한 대안으로 임대아파트 입주권(아래 입주권)과 이주금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 제시됐어야 하는데, 철거 초기 입주권에 대한 사실이 공지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구청측이 주민들에게 제공할 18평 임대아파트의 수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주금을 주는 대안만을 제시했고, 입주권에 대한 공지가 없는 상태에서 많은 주민들은 적은 이주금만을 받고 이사를 나간 것이다. 비록 뒤늦게 구청측에서 입주권과 관련한 대안을 공지했지만 이미 상당수의 주민들이 떠난 상태였다. 또한 남은 주민들 역시 그동안의 철거 투쟁으로 빈털터리가 돼버려 보증금을 마련할 수 없는 이들에게 입주권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는 철거민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채 무일푼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02년부터 4년째 삼일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삼일아파트철거대책위원회’ 임병근 위원장(57)은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쉽사리 집을 비울 수도 없다. 그래서 경제활동은 전혀 하지 못한다”며 그들이 지닌 심적 불안감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설명했다. 구청측이 제시한 이주금과 관련해서도 그는 “이사비용도 안되는 2백만원 정도를 주고 나가라고 하면 나갈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이주금을 받아서 나가면 5년 동안 임대아파트도 분양받지 못하고 지금과 같은 떠돌이 철거민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 번의 철거 위협과 단전, 단수 등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 상황을 견뎌내면서까지 삼일아파트 철거민들이 구청측에 요구하는 것은 단 한 가지, 철거민 스스로가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마련할 때까지만 현재 주민들이 기거하고 있는 10동을 가수용시설로 남겨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에 구청측은 ‘검토중’이라는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실제로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종로구청 주택과 권성식 직원은 “법적으로 보장된 보상금 및 이주금을 모두 지급하고 공지한 상황에서 가수용시설을 유지시켜달라는 주민들의 요구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구청측은 ‘철거는 국가사업을 수행하는 것이므로 법에 제시된 이상의 보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삼일아파트의 40여세대는 갈 곳이 없는 상태다. 오랜 기간 투쟁하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구청에서 설치한 감시카메라의 감시를 받으며 철거 위험을 안고 아파트 안에서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키는 일 뿐이다. 이미 모든 이가 떠난 삼일아파트 7동에는 철거를 시도했던 흔적을 보여주는 잔해와 굳게 닫힌 문만이 남아있다. 자물쇠로 굳게 잠긴 문 사이로 보여지는 철거의 잔해들은 불안에 떨면서 하루하루를 지낸 철거민들의 부서질 대로 부서진 마음 속을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그러나 철거의 잔인한 흔적들 속에서도 여전히 구청측은 이들을 방치하고 있으며, 철거민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아파트에 남아 끝없는 대립을 이어나가고 있을 뿐이다.

강동철 기자  fusionsk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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