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특집
[문화기행] 가난해서 선한 화가의 순수한 붓질화가 박수근의 고향 양구를 찾아서
  • 양소은 기자
  • 승인 2005.03.12 00:00
  • 호수 1511
  • 댓글 0

깊은 산골의 시린 겨울, 소년은 어떠한 희망을 가지고 꽁꽁 언 손을 달래며 눈 앞의 겨울 나무를 그렸던 것일까. 소년은 시간이 흘러 자신의 붓질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따스함을 지펴주리라 생각했었을까. ‘가장 한국적인 서양화갗로 평가되는 화가 박수근은 그의 유화만의 독특한 질감과 함께 한국적이고, 인간미 넘치는 예술세계를 보여준 화가였다. 그를 소개할 때 으레 따라붙는 ‘서민의 화갗라는 수식어는 그의 그림에서 풍기는 진실함과 소박함을 담아내기엔 부족하다. 그의 고향 양구에서 마주친 사람, 자연, 그리고 그의 옛 시절 또한 소년의 꿈과, 까칠한 스케치북의 연필자국만큼이나 정겹고도, 순수했다.

양구, 화가의 마음 속 캔버스

구불구불한 산길로부터 박수근의 고향을 향한 여정이 시작됐다. 강원도의 산을 휘감은 길을 따라 버스는 이리 휘청 저리 휘청거렸다. 흔들리는 차창 너머 펼쳐진 산과 강의 옆모습에선 싸늘함 사이로 가만히 들리는 심호흡이 감춰져 있었다. 이젠 빈 손이 된 나무부터 눈이 채 녹지 않은 겨울의 땅, 그리고 두터운 얼음 아래로 흘러가는 개울까지 양구의 자연은 하나같이 박수근의 그림에서 막 뽑아낸 듯한 빛깔이었다.

한참을 돌고 돌아 도착한 양구읍은 읍 전경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고, 소담한 곳이었다. 화가 박수근은 1914년 2월 21일,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산골에서 나고 산골에서 자란 소년 박수근은 양구보통학교 시절에 미술시간을 무척이나 기다렸다고 한다. 그저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던’ 이 소년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려낸 밀레의 「만종」을 보며 화가로서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래서일까, 화법과 시기는 달라도 밀레와 박수근의 그림엔 나무와 농부가 함께 살아 숨쉰다. 박수근의 고향 정림리엔 그를 기념하는 ‘박수근 미술관’이 자리했다. 길을 물으면 길가로 뛰어 나와 자세하게 길을 안내해주는 양구 사람들의 정겨움을 손난로처럼 품고, 흙빛과 풀빛의 논둑을 건너며 미술관으로 향했다.

화가를 닮은 그림을 만나

오돌토돌한 박수근 그림만의 독특한 마티에르(matiere, 회화 재료의 질감)를 닮은 화강암벽과 그 옆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지나자 박수근의 동상이 우리를 맞이했다. 동상의 오른편엔 스케치북과 연필이 놓여 있고, 화가의 시선은 미술관과 그의 고향 마을을 향해 있었다. 그의 눈길을 좇아 미술관에 들어섰다. 화가의 소박한 품성을 닮은 미술관에는 그의 위대한 작품의 바탕이 되었을 수많은 드로잉과 스케치가 가득했다. 오늘날 그의 그림은 높은 경매가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 명성과 영예는 그가 죽고 나서야 얻어진 것이다. 박수근은 죽을 때까지 빈한한 삶을 살아갔고 그가 물감과 붓을 샀던 화구 영수증이 남아 가난한 화가의 삶을 증명하듯 미술관 한켠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 가난한 화가는 그의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파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 김복순, <나의 남편 박수근과의 25년>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직접 동화책의 삽화를 그리고 이야기를 써넣었던 박수근. 그는 가난한 화가였지만, 자상한 아버지이자 남편이었다. 이런 순수함 때문인지 그의 스케치들은 언뜻 보면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같다. 단조로운 선과 투박한 그림체, 사람들의 네모난 얼굴과 간결하게 채워넣은 배경들. 그런 그의 그림이 깊은 감동을 안겨주는 건 그 단순함이 놀랍게도 세상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박수근의 그림 「빨래터」에 담긴 마을 아낙들의 옷매무새와 행동은 그들의 표정과 삶까지 읽을 수 있게 하는 매개체로 다시 태어난다.

박수근은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보통학교 졸업 후에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 없었지만 고향의 자연과 사람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종종 학교 뒷산에 올라가 나무를 그렸고, 박수근이 즐겨 그렸다는 느릅나무는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3백년 수령의 느릅나무는 시들어 가는 몸을 콘크리트에 의지한 채 서있지만, 화가의 그림 속 나무는 참으로 다행히도, 보는 이들의 가슴 속에 깊이 뿌리내려 시들 줄을 모른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 박완서, <나목>

작가 박완서는 박수근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앙상한 겨울나무를 이렇게 표현했다. 실제로 그의 그림 「꽃피는 시절」에는 제목과는 달리 무채색의 겨울 나무들이 그려져 있다. 누군가는 그의 그림을 보고 건조하고 탁한 그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봄을 꿈꾸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의 그림엔 살아 숨쉬는 자연과 소박한 희망이 움트고 있다. 나뭇가지를 스치는 찬 겨울바람 너머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었던 화가 박수근. 그의 색조 없는 그림에서 은근한 따사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화가의 믿음 때문일 것이다.

선한 세상을 그리고 싶었던 화가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 아이들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김복순, <아내의 일기>

양구읍 상점들의 손때 묻은 벽 한켠엔 꼭 박수근의 그림이 한 장씩 걸려있었다. 정 많은 양구 사람들의 삶 속에 그렇게 조용히 자리한 그의 그림을 마주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선함과 진실함을 담고 싶어했던 그의 소망은 어느새 이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수근은 지금, 양구읍 정림리의 산 언저리에 묻혀 봄을 기다리는 논과 밭, 그리고 착한 사람들을 지그시 바라보며 천천히 붓질을 이어가고 있을 것만 같다.

양구에서 박수근은 마을과 자연을 그리며 유년기를 보냈다. 그리고 스물 한살 무렵 고향 양구를 뒤로 하고 춘천으로 향했다. 그는 가난과 전쟁에 휩쓸려 이곳저곳 옮겨다니며 살았지만 그를 키워준 양구는 그를 기억하며, 그와 닮아있는 곳이었다. 스물 한살의 박수근이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건넜을지도 모르는 소양호를 지나며 박수근과의 여정을 매듭지었다. 소양호 맑은 물의 깊이만큼이나 화가의 믿음도, 세상에 대한 사랑도 언제까지나 간직할 수 있길 기원하면서.

양소은 기자  nacl1013@dreamwiz.com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양소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