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를 이해하고 죽은 자의 영혼과 마주하다

부부사이든 애인사이든 친구사이든 모녀사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이임에도 완전한 이해는 불가능하고 갈등의 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나 독사처럼 혀를 날름거린다. 이러한 모든 관계의 비극은 바로 나와 당신이 서로 ‘타자’라는 사실 때문이다. 개인성의 발현이 극대화될수록 자의식이 명료해져야 마땅할 듯 보이는데, 현대의 개인주의는 자신의 명료한 정체성을 나타내주기는커녕 타자와의 이해 및 소통을 더욱 방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인의 외로움은 아마 여기에 그 이유가 있으리라. 이유야 어찌됐건, 자신의 모든 정체성은 타자로부터 나오는 것이며, 결국 자아의 실체를 뚜렷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타자와의 소통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20세기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버린, 아일랜드의 위대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 그는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의「사자(The Dead)」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고찰하고, 이를 통해 타자와의 이해, 나아가 죽은 자와의 이해로까지 이르는 지식인의 의식을 다뤘다. 마비된 도시 더블린 사람들의 모습이 비단 이들만의 모습은 아니리라.

모컨의 자매가 해마다 여는 댄스파티는 언제나 큰 행사였다. 파티에는 그녀들을 아는 모든 사람들, 즉 일가친척들, 집안의 오랜 친구들, 줄리아가 지휘하는 합창단원들, 케이트의 제자 중에서 성인이 다 된 사람들 전부와 메리 제인의 제자들 중 몇 명도 왔다.

작품의 80% 가까이를 지배하고 있는 배경은 모컨 자매의 댄스파티다. 작가는 주인공인 가브리엘과 그의 아내가 이 파티 장에 참석해 사람들과 어울리며 얘기를 주고받는 것 하나 하나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너무나 일상적인 얘기들, 전혀 아무런 의미가 있을 것 같지 않은 대화와 생각, 그리고 장면 묘사들이 계속된다. 저명한 문학가인 가브리엘이 연설의 서두에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를 인용하려고 하는데, 과연 사람들이 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모습에서부터 줄리아 이모가 노래를 부르고, 칠면조 고기를 잘라서 나눠 먹는 장면까지, 작가는 담담하게 파티 장의 모습을 묘사한다. 작가의 이러한 자연주의적 묘사는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며 사는 일상생활의 모습 그 자체이며, 어떤 스토리도 이 묘사들의 행진에 끼어들지 못한다. 아무런 스토리가 없는 묘사의 연속이기에 자칫 지루해지기 싶지만, 그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책장을 덮어 버린 독자가 있다면 조이스는 저 하늘나라에서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지루한 일상의 묘사는 반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의 모든 욕망과 깨달음 역시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럴 것도 없는 일상에서 삐져나오는 것이었음을.

아내는 자기 앞을 어찌나 사뿐히, 그리고 어찌나 다소곳이 걷고 있던지, 그 뒤를 소리 없이 뛰어가서, 아내의 어깨를 덥석 껴안고서, 그 귀에다 대고 그 무슨 어리석고 다정스러운 말을 속삭여주고 싶었다.(중략) 아직도 더 다정스러운 기쁨의 파동이 그의 심장으로부터 뿜어 나와 뜨거운 홍수처럼 그의 동맥 속을 굽이쳐 달렸다.

파티가 끝나고 가브리엘과 그의 아내는 미리 예약해 놓은 호텔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 과정에서 가브리엘은 아내를 보면서 매우 아름답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우아하고 신비스러운 그녀의 모습에서 새로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자신이 화가라면 저런 모습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방에 도착한 후 가브리엘은 자신의 아내에게서 참을 수 없는 욕정을 느낀다. 맵시가 우아하고 몸가짐이 아내다운 자신의 아내가 견딜 수 없이 자랑스럽다. 그는 아내를 불쑥 껴안고만 싶지만 아직 아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가브리엘은 계속 망설이고, 아무렇지도 않는 얘기만 건넨다. 그러다 갑자기 아내가 그에게 키스를 한다. 가브리엘은 아내도 자신처럼 욕정에 불타고 있다고 생각하며 기뻐했지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 아내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그녀는 파티 장에서 들었던 '오그림의 처녀'를 생각한다고 말하며, 이는 옛날 어떤 소년이 자신에게 불러줬던 노래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 소년을 회상한다.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를 생각하고 있다는 아내의 말을 들은 가브리엘은 토라져서 아내에게 빈정거린다. 하지만 아내는 그 소년은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얘기한 후, 그와의 추억을 얘기하고 그를 가엾게 생각해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무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으로 가브리엘은 깨달음을 얻는다. 타자에 대한 그의 이해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한 시간 전에 복받쳐 오르던 자기의 격정이 이제 생각해보니 이상하기만 했다. 그것은 어디서 온 것이었을까? 이모댁의 만찬에서, 자기 자신의 어리석은 연설에서, 포도주와 춤에서, 현관에서 작별 인사를 할 때에 하던 농담에서, 강을 따라 눈 속을 걷던 기쁨에서 온 것이리라.

그는 아내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아내는 자신의 아내이기 이전에, 하나의 생명을 지닌 개체이며 자신이 모르는 아내의 사정이 분명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내의 로맨스를 이해하고 자신이 아내의 인생에서 얼마나 미약한 역할을 했는지도 깨닫는다. 아내에 대한 이해는 복받쳐 오르던 자신의 욕정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의 반문으로 이어진다. 그는 파티 장의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에서 자신의 욕정이 온 것임을 깨닫고 이어서 죽은 자와 앞으로 죽을 자에 대한 이해에 까지 나아간다. 나이가 많은 자신의 이모들이 죽을 앞날을 생각하고 죽음 앞에서 어떤 위로도 효과가 없음을 깨닫는다.

관용의 눈물이 가브리엘의 눈에 가득 어리었다. (중략) 그의 영혼은 무수히 많은 죽은 사람들이 사는 영역으로 벌써 다가갔다. 걷잡을 수 없이 어른거리는 사자들의 존재를 그는 의식하면서도 붙잡을 수가 없었다. 자기라는 존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뿌연 세계로 사라져가고, 그들 죽은 사람들이 한때 살던 현실의 시계 그 자체는 허물어져 점점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가브리엘의 일상은 아내에 대한 자신의 격정으로 이어졌고, 그 격정은 아내의 로맨스로 사라지고 동시에 아내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다. 아내에 대한 이해는 아내 때문에 죽은 아내를 사랑하던 옛 청년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앞으로 죽을 자신의 이모들을 비롯한 모든 죽은 자들에 대한 이해로 이어졌다. 잠을 자기 위해 누워 있는 가브리엘의 깨달음은 무수히 많은 죽은 자들의 영혼과 마주하게 됐고, 그는 그렇게 의식을 잃고 잠이 든다. 창 밖에는 흰 눈이 소복이 쌓인다. 자기 또한 모든 것을 다 이해나 한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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