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6일은 유난히도 춥고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 편집국에서 기획기사 준비를 하고 있던 내게 급한 연락이 왔다. “사진기자! 준비되는대로 윤동주 시비 앞으로 와 주세요! 취재 있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서둘러 사진기와 수첩을 들고 달려간 윤동주 시비 앞에는 열댓명 정도의 각종 일간지와 방송사에서 나온 기자들이 있었고, 취재온 기자들 수보다 조금 많은 참배객들이 서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사랑하는 시인, 암울한 일제 강점기를 버틴 민족시인’이라고 불리는 그의 서거 60주년 행사는 이렇게 조촐한 모습으로 시작한지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추모의 꽃만 남기고 끝이 났다.

나는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학창시절,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윤동주를 꼽았던 기억과 함께 우리대학교의 오랜 선배인 그를 제대로 기리지 못했다는 생각에 무슨 죄라도 지은 기분이었다.

다음 날, 각종 인터넷뉴스와 일간지 신문에는 조촐했던 윤동주 서거 60주년 행사를 안타까워하는 기사들이 실렸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날이 윤동주 서거 60주년인지도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대학교 ‘윤동주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매번 추모행사를 열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윤시인의 삶은 갈수록 잊혀 가는 것을 느낀다”며, “윤시인의 추모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도 유족이나 뜻있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윤시인의 뜻을 기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제대로 된 추모 행사를 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주고, 그의 이름으로 상을 주면서, 막상 그를 기리는 행사에는 심혈을 기울이지 못했던 기념사업회 측에도 불찰이 있지만, 윤동주의 뜻을 기리는 분위기와 관심을 이끌어 내지 못한 언론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는 않을까. 언론에서 미리 신경을 썼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뜻깊은 행사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조촐했던 그날 행사를ㄹ 떠올리면, 언론이 진정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에는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는 것 같아 못내 안타깝다. 그날은 ‘2월 16일’이었다.

/사진부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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