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지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가 점점 복잡해지고 미디어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은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현실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미지는 어떤 사실을 과장하거나 단순화시켜냄으로써 그 이면에 실재하는 중층적이고 모순적인 스토리들을 지워버린다. 이러한 이미지 시대에 ‘성차’가 여전히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권력이며 왜재화의 도구임을 주장하는 일이 점점 힘겨워지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고 있는 소위 ‘여풍’은 매우 고무적인 실제지만 동시에 ‘이미지’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각종 고시에서 합격한 여성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여성 장관이 탄생하고 있으며, 여성 총학생회장이 늘고 있고, 여기저기 성공한 커리어 우먼의 신화들이 넘쳐난다. 여풍은 남성들 간의 배타적 연결망으로 장악됐던 의사 결정직에 소수의 엘리트 여성들이 갑작스럽게 진입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새롭고, 매력적이며, 고무적인 이야기거리다.

그러나 이러한 ‘여풍’ 이미지 시대에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자리매김된 수많은 보통 여성들의 가난, 불안, 모욕의 경험들은 표현되지 못한다. 비정규직의 80%가 여성으로 채워지고, 아이를 낳고 기를 것인가와 직장을 다닐 것인가를 햄릿처럼 고민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인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 얼마나 변화하고 있는가? 그저 현실속 여성들의 스토리들은 시대착오적인 ‘응석’이나 분노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뻔한’ 얘기들로 치부된다. 또한 ‘여풍’ 이미지들은 그러한 조건에 도달하지 못한 여성들을 훈계하거나 질책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요즘이 어느 세상인데 차별이 있는가? 여자들이 얼마나 무서운데’라는 말은 지극히 한정적인 경험과 계층성에 기반을 둔 사적인 얘기일 뿐이다. 최소한 타인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자신이 경험하고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해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성평등 지수의 개발이나 성평등 영양평가를 통해, 조직이나 사회 전반의 성평등 수준을 측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소한 숫자를 통해서라도 이미지보다는 갈 길이 많은 현실의 상황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단순한 선언이나 말뿐이 아닌,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자원의 재분배가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젠더 예산(gender budget)의 개념을 도입하는 조직들이 늘고 있다. 제도의 개혁이나 집행을 통해 구성원의 삶의 건강성을 증진하면 조직은 활성화되기 마련이다. 소수의 여성 엘리트 이미지에 의존하여 성평등의 신화를 현실로 받아들이기엔 우리 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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