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혀있던 우리의 소통로가 뚫렸을 때의 그 찌릿함을 느껴보고 싶다"

▲지난 1월 27일,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개봉한 영화 『말아톤』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한 소년의 삶을 과장없이 그려내 우리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자폐아를 다룬 이 영화가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내며 흥행에 성공하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자폐아’와 ‘자폐증’으로 모아졌다.

▲현재 우리 사회의 자폐아는 4~5만명으로 추산되며, 이 수치에 따르면 1천명당 1명꼴로 자폐증이 발병하고 있는 셈이다. 자폐증은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있어서 광범위한 장애를 갖게 되는 아동기 증후군으로, 자폐아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 가운데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가 가장 의미있는 특성으로 파악되고 있다. 자폐아가 소통에 문제를 겪는 이유는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해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인데, 여기서 우리는 소통이 ‘타인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이뤄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타인과 타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이해와 배려 없이 서로 말만 주고 받는 행위를 ‘소통’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을 되돌아보면, 소통 장애는 비단 자폐증 환자만이 안고 있는 증상은 아닌 듯하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는 ‘말하기 듣기’라는 과목을 배웠다. 하지만 우리는 말하기만 너무 열심히 배웠던 탓인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데는 영 서툰 것 같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자기 이야기로 자르고, 건성건성 듣고 있다가 대충 핵심만 잡아서 엉뚱한 답변을 내놓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곤 한다. ‘제대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말 속에 담긴 상대방의 마음까지 듣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뿐만 아니라 눈빛과 손짓 같은 신호까지 정성스럽게 가슴에 각인시켜 듣는 것.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말을 건성건성 듣고 있는 사이, 이러한 신호들을 놓쳐버린 채 엉뚱한 반응을 보이는 일이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내 일에 나만큼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다’는 자각과 함께 끔찍스러운 단절감을 경험한다.

▲상대방이 내 가치를 인정해 주고 있다는 느낌, 내 의견에 동의하는지의 여부를 떠나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있다는 느낌은 누구에게나 기분 좋은 느낌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통이 줄 수 있는 기쁨이다. 하지만 우리가 귀를 닫고 상대방의 말을 흘려 버리는 사이, 우리는 그만 ‘소통’이 주는 기쁨의 맛을 잊어버렸다. 소통이 없다는 것은 단절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절감은 외로움을 낳는다. 자신만을 배려하며 내뱉은 수많은 말들은 어디에도 흡수되지 못한 채 겉돌다가, 결국 서로의 가슴에 ‘외로움’이란 생채기가 돼 돌아오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한 선배는 추운 날 꽁꽁 얼었던 손이 따뜻한 곳으로 들어갔을 때, 손이 풀리면서 느껴지는 찌릿함이 좋다고 말했다. 혈로가 막혀 피가 멈춰 있다가, 막혔던 것이 터지고 피가 다시 흐를 때 느껴지는 그 찌릿함. 막혀있던 우리의 소통로가 뚫렸을 때도, 이와 비슷한 쾌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 그런 기분 좋은 찌릿함을 많이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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