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와 아렌트

철학자들이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책상에서 이야기하며 고리타분한 삶을 보냈을 거라 씁쓸한 조소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면 잠시 귀를 기울여 보자. 사제지간이면서 서로의 반대되는 정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50여년간 서로 사랑해온 철학자 연인이 여기 있다. 20세기 실존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1906 ~1975)는 사제지간이자 연인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인간은 시간에 던져진 현존재’라는 말로 유명한 하이데거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표주자이다. 젊은 하이데거는 독일의 마르부르크대학에서 쉽고 재미있는 철학 강의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그의 소문을 들은 아렌트는 마르부르크대학에 입학한다. 35세의 기혼자인 하이데거의 수업을 들은 19세의 아렌트는 그의 철학적 사상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것에 푹 빠지고 만다. 아렌트 역시 하이데거의 눈에 띄어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후에 하이데거가 아렌트가 없었더라면 그의 대표저서인 『존재와 시간』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고백한 것도 그녀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아렌트와 하이데거』라는 책을 번역한 경희대 NGO학과 서유경 교수는 “하이데거는 아렌트를 충성된 연인이자 자신의 저작들을 잘 이해하는 숭배자로 평가했다”며 아렌트에 대한 하이데거의 열정을 말했다.

그렇지만 여대생과, 아들이 둘이나 있는 교수의 사랑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아렌트가 하이데거를 더 사랑할수록 하이데거는 자신의 명성이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결국 하이델베르크로 가라는 하이데거의 말에 아렌트는 사랑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그의 곁을 떠난다. “하이데거에게 ‘이반(離反)’, 즉 진정한 삶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을 진정한 행복으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사실, ‘교수와 여제자’라는 관계보다 더욱 큰 난관이 그들에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상의 차이였다. 하이데거가 나치 운동에 가담해 교수직을 박탈당한 반면, 아렌트는 나치즘에 반대하는 유태인이었던 것이다. 유태인으로 태어나 나치 치하의 혹독한 시절을 보내며 전체주의의 본질을 밝히는 데 한평생을 보낸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그런 ‘죄’에도 불구하고 그와의 서신을 계속 주고받는다.

이러한 세계관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 둘의 사상은 분명 서로에게 영향을 줬다.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정치이론에 적용해 현대사회에 방향성을 잃은 군중들의 세계상실을 주장한다. 또한, 『전체주의의 기원』과 같은 대표적 저서로 스승만큼이나 명성을 얻기 시작한 아렌트는 하이데거의 ‘진리를 향한 사랑의 영역’이라는 신념에서 발상을 얻어 나치 지배 전범인 아이히만에 대한 보고에서 ‘악의 진부성’이라는 개념을 각인시킨다. 아이히만 개인이 비도덕적인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전체주의가 가장 진부하면서도 체계적인 관료적 동기에 의해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50년 후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에게 배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만남을 가졌으나 더 이상의 사상 교류는 없었다. 스승은 자신만큼 훌륭한 제자를 보면서, 제자는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스승을 보면서 젊은 시절의 사랑을 회상했을지도 모른다. 그윽해져버린 서로의 사상과 사랑의 흔적을 보며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켜준 하이데거와 아렌트는 세기의 아름다운 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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