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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기획] 사회의 물과 공기, 헌법의 의미를 고찰하다법학과 김종철 교수

헌법은 우리가 인식하건 하지 못하건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그 무엇이다. 우리는 공기가 없으면 잠시도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헌법은 우리들의 삶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면서도 그 존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헌법의 이름으로 거창하게 이뤄지는 나랏일들이 새롭게 인식될 뿐, 기실은 헌법과 함께 우리는 살아왔던 것이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놀고, 공부하고, 돈벌고, 사람과 사귀는 모든 활동에 국가 혹은 정부라고 불리는 존재가 직접, 간접으로 개입하고 있고 그의 존립과 활동의 근거가 헌법이다.

헌법에 지배되는 사회

헌법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행위규범이 된 것은 프랑스혁명으로 상징되는 근대사회의 등장 이후이다. 그 이전 시대의 헌법은 정치권력의 제한규범으로 기능하기도 했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생활규범으로서의 성격을 가지지 못했다. 단순히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는 봉건계급의 특허장이거나 국가조직법적 성격을 가질 뿐이었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주체적으로 그 형성에 참여하는 것은 배제됐다. 비유하자면 국가권력은 공동체 구성원보다 먼저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그 존재와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반체제적 금기사항이었다. 서구에서 공동체 구성원을 주체로 해 공동체의 구성과 공동체에 절대적 의미를 가지는 공동체의 근본규범으로 헌법이 자리하게 된 계기가 시민혁명이다. 사회계약설을 그 이론적 기초로 하는 시민혁명은 국가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피조된 것임을 분명히 하는 정치적 계기였다. 사회계약의 결과 국가의 성립을 정당화하고 그 활동의 범위와 한계를 설정하는 기준이 헌법이며, 이를 중심으로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해 충돌을 조절하는 권력작용이 이뤄지도록 하는 입헌주의가 지배이데올로기로 등장했다. 입헌주의는 무엇보다도 공동체구성원의 명시적 의사를 표명한 성문헌법으로, 관습이나 전통에 바탕해 자의적 지배를 일삼는 전근대적 행태를 근절시킨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시민혁명의 결과로 성립된 근대시민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입헌주의는 헌법의 규범영역을 정치영역에 국한시키고 경제, 사회, 문화영역의 자유방임을 기조로 하는 한계를 가졌다. 그 결과 인간 삶의 총체적이고 관계적 성격을 무시하고 존재론적으로 원자화된 개인을 전제로, 기회의 평등개념에 바탕한 사실상의 약육강식의 사회질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로 인해 촉발되는 계급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절대적인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공산화의 길과, 기회의 평등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회질서에서 결과의 평등을 공공성의 구현체로서 국가가 부분적으로 강제하는 복지국가의 길이었다. 공산화의 길이 사회적 연대의 이름으로 개인적 자유의 본질적 내용마저 침탈하는 반입헌주의적 대안이었다면 복지화의 대안은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조화시키려는 더 높은 단계의 입헌주의의 길이었다. 우리 대한민국이 토대한 헌법은 후자의 길을 채택했으며 이로써 헌법은 단순히 정치적 통합을 위한 규범의 의미를 벗어나 사회통합의 준거로서의 의미를 내재하고 개인의 사회생활의 가치지향까지 제시하는 명실상부한 국가와 사회의 근본 규범으로 자리하게 됐다. 우리가 법치국가 혹은 입헌국가라고 할 때 그러한 공동체는 자유와 민주를 기본 가치로 삼으며 우리의 삶에 기본적인 준칙이 되는 헌법에 지배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헌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

헌법이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 평등, 사회적 연대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 실현의 전제로서 국가와 사회의 민주화를 제시하는 공동체의 근본규범이라는 사실로부터 우리가 왜 헌법을 배워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헌법은 입신출세의 수단이 되는 각종 고시의 기본과목이므로 법전문가가 되려는 일부의 국민들만 열심히 공부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일반 국민은, 공동체에서 그들이 가지는 지위와 역할을 분명히 하고 공동체 운영의 기본원리를 습득하는 기회를 제공받아 올바르게 자유와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운영주체는 능력있고 가치관이 바른 자들로 뽑혀야 하며 공동체전체의 이익에 따라 그들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항상 헌법적으로 깨어 있어야만 한다. 국가를 운영하는 위정자들은 국가가 왜 존재하며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의 의미가 무엇이고 어떤 조건하에 행사돼 어떤 효과를 부여받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헌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해 위정자들을 제대로 뽑지 못하고 또 올바르게 견인하지 못하거나, 위정자들이 헌법 의식이 부족해 공동체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비전이 결여되고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부분집단을 위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잘못 행사하게 된다면 우리 헌법이 약속하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자유, 안전 및 행복의 영원한 확보”는 공염불이 되고 우리들의 삶은 저열한 수준에 이를 수밖에 없다.

최근 각종 현안, 특히 국가와 사회의 민주화를 추구하는 각종 개혁입법의 운명을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있다. 그 와중에 어렵사리 쟁취한 민주화와 자유화의 광장을 더럽히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고픈 욕구를 절제하지 못하는 위정자들과 그들을 찬양·선동·고무하는 일부 국민이 있다. 이들은 우리 헌법이 요구하는 입헌주의의 의미에 대해 숙고하고 스스로를 계몽시킬 필요가 있다. 특히 헌법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할 헌법적 사명에도 불구하고 성문헌법이라는 입헌주의와 근대성의 핵심적 장치에 내재한 근본정신을 몰각한 채 전근대시대 자의적 지배의 전형인 관습헌법에 의한 지배를 복원시킨 시대착오적인 사법권력의 담당자들은 누구보다도 입헌주의 헌법에 대한 의식화과정을 이수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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