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 '자코메티 석판화전'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모든 사람들이 한눈에 알아주는 작품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피카소, 마티스와 함께 세계적인 작가라고 불리우는 자코메티(Giacometti, 1901~1966)는 이런 생각을 단번에 깨주면서 또 다른 세계적인 것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준다.

깔끔하고 단아한 갤러리에 들어서면 은은한 음악과 함께 그의 작품들이 점점 보는 이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그의 작품은 온통 회색빛이다. 하얀 바탕, 그리고 그 위의 선, 이 두가지가 그의 작품의 전부인 듯 보인다. 그의 작품에는 눈길을 확 사로잡는 화려한 색깔이 없다. 한눈에 보고 감탄사가 나올 만한 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보면 볼 수록 그 속으로 계속 가까이 빠져들게 하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번 ‘자코메티 석판화전’에서는 그가 남긴 2백여점의 석판화 가운데 15점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전시되고 있다. 판화라는 말에서 누구나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고무판에 열심히 조각칼로 선을 파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판화를 작품으로 접할 기회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코메티의 작품이 다소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어색함에도 불구하고 회화에 가장 가깝다는 석판화이기 때문에 그런지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판화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섬세한 모습이었다. 선이 살아있어서 스케치한 그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생동감이 느껴졌다.

장 폴 사르트르는 “자코메티는 그림 그 자체가 갖고 있는 평면적 모습에 환영을 입혀 우리로 하여금 마치 현실의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는 듯한 느낌과 태도를 불러 일으키고픈 것”이라고 말했다. 사르트르의 말처럼 그의 선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사실적인 느낌을 표현한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눈, 코, 입 중 하나가 없거나 완성된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앞에서 움직일 것만 같은 모습이 보는이들을 감탄시킨다.

그의 작품들의 특징 중 또 다른 하나는 전체적으로 흘러나오는 고독과 외로움이다.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또한 동생이 일찍 죽는 등 순탄치만은 않았던 그의 삶의 모습이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었다. 항상 자코메티 작품 속의 등장인물은 단 한 명뿐이다. 수척하고 마른 모습을 한 그의 인물은 인간의 ‘고독함’을 한눈에 느낄 수 있게 표현돼 있다. 자코메티는 자신의 어록에서 “나는 아름다운 그림이나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기 위해 창조하지 않는다. 예술은 단지 보는 수단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여주기 위한 고독이 아닌 진심을 담아 작품에 임했고 그 작품 속 진심은 조용히 관람객들에게 다가와 그들의 고독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쥴리아나 갤러리에서 오는 16일까지. (문의: ☎514-4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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