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연 아침 공기에 가야의 소리가 묻혀 들려온다.

우륵의 아픔을 찾아온 우리에게 아련한 분위기를 선사하듯 날은 너무나 흐렸다. 고령읍에 자욱이 낀 안개를 헤쳐 대가야 왕릉터로 향했다. 왕릉터에 가까이 갈수록 올록볼록한 무덤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니 저것들이 가야를 먹여 살린 젖무덤이리라. 『현의 노렌의 첫 장을 웅장하게 연주하는 순장묘를 찾아 이 곳에 온 우리를, 수많은 무덤과 까치 두 마리가 반겨준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순장묘는 처음으로 발견이 됐심더. 이 산 전체가 무덤이라니 믿기 힘든 일이지 않습니꺼.” 날씨에 맞춰 축 처진 우리에게 고령 문화 유산 해설가 김재호씨가 활기를 채워준다. 마저 힘을 내서 김씨의 안내를 따라 무덤터를 주욱 따라 올라가 보았다.

울음은 물결처럼 일렁이면서 산으로 올라갔다. 길고 가는 울음의 한 줄기 잦아들면 또 다른 울음의 줄기가 일어서서 뒤를 이었다. 울음은 먼 들판 저쪽의 대숲을 흔드는 바람 곁에서 태어나는 듯싶었다.

순장을 하러 올라가는 백성들의 울음소리를 따라하듯 까치도 혹은 까마귀일지도 모르는 새들이 마구 울어댄다. 왕이라는 별이 졌다는 안타까움은 둘째 치더라도 산 사람을 매장해야 하는 마당에 까치든 까마귀이든 뭐가 그리 중요하리요. 그저 울어대는 새가 가야의 슬픔을 더욱 돋군다. 길게 늘어지는 울음소리는 순장을 당하는 아라(왕의 시녀로 순장을 당할 운명이었으나 이에 저항하고 도망가는 소설 전반부의 주요인물)의 발걸음보다도 길었다. 이 슬픔을 우륵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정정’대는 가야금을 퉁기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었겠지.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우리는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다는 ‘정정골(丁丁골)’로 갔다. 고을 주민들이 세워 놓은 ‘우륵기념탑’이 정정골에 우뚝하고 솟아 있으니 고령의 소리도 우뚝하고 솟았다.

“열두 줄을 걸자. 열두 줄이면 이 세상의 넓이와 모든 시간이 담기기에 족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두 손은 능히 열두 줄을 넘나들며 울려낼 수 있다. 더 많아도, 더 적어도 안 될 것이다. 열두 줄이다.”

열두 줄이면 충분하다는 우륵의 말처럼 정정골은 가야금을 연주하기에 충분히 고아했다. 아직까지는 차가운 바람과 잿빛 하늘이 가야를 잃어가는 우륵의 손놀림을 더욱 아련하게 한다. 이런 우륵의 아련한 손놀림에서 퉁겨 나온 소리가 흘러 흘러 개포 나루에까지 이른다. 개포 나루에 도착하니 나라 잃은 설움만큼이나 슬펐던 하늘에는 어느새 푸르름이 돋아 있었다. 들판을 끌어안고 서늘하게 굽이져서 흐르는 강물을 따라 도망쳐 나온 아라의 오줌줄기도, 신라에 투항할 수밖에 없었던 우륵의 한숨도, 한평생을 ‘철’에 맡겼던 야로(우륵과 함께 소설의 주요인물. 쇠붙이 무기를 잘 만들어 왕의 신임을 받고 있으나 가야의 쇠퇴를 점치며 신라로 무기를 빼돌린다)의 쇠붙이 소리도 흘러간다. 산으로 둘러싸인 대가야를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인 개포 나루에서 우리는 『현의 노렌의 주인공 모두를 만난다.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며 봄바람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개포 나루에서 ‘탕탕탕’하고 연주를 하기 시작하는 야로. 그 야로의 노래를 자세히 들으러 ‘야로’면으로 향했다. ‘철’이라는 뜻을 지닌 야로의 굳건한 쇠망치 소리를 무작정 따라 갔더니 그 곳에는 무덤과 옛 대장간 터만 남아 있었다. 그 곳에서는 또 무엇을 더 들으리. 한옥과 양옥이 묘하게 조합되어 있는 슬픈 광경의 대장간 터에는 개들이 우리를 경계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개들의 소리가 조국을 배반하고 신라에 철 무기를 빼돌리던 야로의 경계심보다 더 강한 것일까. 마을 가득 울려 퍼지는 개 짖는 소리를 뒤로 하고, 터만 남아있는 대장간을 뒤로 하고, 아쉬움만 가지고 다시 읍으로 돌아왔다.

 망국의 덧없는 떨림을 현에 모두 실은 것일까. 겨울의 끝자락에 위태롭게 서 있는 고령 곳곳에 우륵의 소리가 숨겨져 있으니 대가야는 아직도 무너지지 않았다. 어느 덧 날은 개어서 이제는 노을이 우리를 환송하고 있다. 다홍빛 저녁 공기에 가야의 소리가 묻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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