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은의 '그녀의 여자'와 추 티엔 원의 '이반의 초상'

현대인의 삶의 양식과 관점은 과거의 그것과 일치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삶 속에서 발생되는 정체성의 문제는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과거와는 다른 규범들에 의해 자아 역시 수많은 선택의 손길에 개방돼 있다. 따라서 동성애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이제 동성애를 이성애와 구분하기보다는 동성애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에 대해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광적인 집착으로 상처를 치료하다

“인간은 성 이전에 영적인 그 무엇이야. 인간이 성으로 차별되는 것은 육체 때문이지. 육체를 넘어선 차원의 합일은 성과 무관한 것이야. 영혼끼리 섞일 때 성별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잖아?”

서영은의 소설 『그녀의 여자』에 등장하는 동성애는 단지 형식일 뿐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랑이다. 사고로 위장된 남편의 자살로 그 빈 공간을 메우지 못한 채 공허함으로 지내던 여인과 불행한 과거로 고통받고 외로워하던 여인은 서로에게 서로를 의지한다. 각기 다른 상처를 가진 두 여인이 ‘동성애’라는 사랑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며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성공한 중년의 여성 화가 현여사. 그녀는 남편이 공허함을 참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자 자신 역시 공허함에 빠진다. 홀로 남은 그녀는 죽음으로 마감되는 삶의 허망함을 극복하기 위해 남편에게는 하지 못했던 광적인 사랑을 꿈꾼다. 그 대상은 바로 아들의 여자 소연. 현여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사랑을 위해 소연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표현한다. 하지만 소연을 향한 사랑의 집착은 오히려 폭력적으로 보인다.

 “나는 너에게 내 전부를, 재산과 명예와 목숨 전부를 걸었어.… 네가 내 감정을 희롱하면 죽여 버린다고 했지?”

소연에 대한 현여사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은 이유 없이 무언가를 상실해야 했던 그녀에게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소연의 부재로 인한 불안, 다른 남자와의 만남에 대한 질투 등 그녀는 상대가 이성이든 동성이든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갖게 되는 감정 그대로를 느낀다.

소연 역시 과거 학창시절 여선생님으로부터 느꼈던 감정을 현여사를 통해 다시금 느끼면서 자신을 발견한다. 동성애의 형식만 벗어 던지면 현여사와 소연의 관계는 상처받은 영혼에 위로가 되는 부대낌만이 존재한다.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동성애는 단지 상실의 극복을 위한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너무 많은 집착은 이별을 낳는 법,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소연을 독점하려 했던 현여사의 최후는 이미 예측될 수 밖에 없었다. 소연 역시 성장기의 아픈 상처를 지닌 영혼이기에 현여사와 교감을 이루기는 하나 두 사람은 하나의 합일점을 찾기가 힘들다. 아직 알 수 없는 앞날이 펼쳐져 있는 소연에게는 현여사의 광적인 집착으로 인한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소연과 이뤄 질 수 없게 된 현여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남자대 남자 그들의 사랑을 말하다

한편 ‘추 티엔 원’의 소설 『이반의 초상』은 동성애를 단지 사랑의 테두리로 두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주제로 등장시킨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동성애자들의 삶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서 이성간의 사랑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일반’인들의 세상에 사는 ‘이반’들의 방황, 좌절, 소외에 대한 불만의 표현과 함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굳이 동성애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사랑과 이별 그리고 소외에 대한 반성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주인공 샤오는 마흔 살의 작가로 용제라는 남자와 이탈리아에서 결혼을 한 동성애자다. 그는 오래된 친구 아야오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과거 방황을 회상하고, 용제와의 정신적인 사랑을 통해 삶과 글쓰기의 계속됨을 인정한다. 그의 정신적 지주였던 친구 아야오는 불타는 인생을 살았지만 문란한 성생활로 에이즈에 걸려 죽었다. 하지만 샤오는 용제, 제이 등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아야오를 잊지 않기 위해 기억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수용하기에 현실은 너무나 부담스럽다. 남과 다른 성문화를 갖고 있는 그들의 외로움과 불안은 샤오의 삶에 대한 철학적인 심리 묘사와 미셀 푸코의 삶과 성에 대한 담론을 끌어들였다. 이로써 사회가 동성애자들을 화합이 아닌 적의로, 무관심으로 바라보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푸코는 성의 권력구조를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푸코는 자신의 심적 불안과 동성애에 대한 치료를 고집스럽게 거부했다. 그는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전문가들을 싫어했다. 전문가들이야말로 성에 관한 비밀을 얻기 위해 귀기울이며 ‘비정상적인’ 사람들에게 성적인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비웃곤 했다.

하지만 샤오는 제이와 용제, 그리고 아야오를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였다. 샤오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생각은 그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만큼 특별하다. 그들은 단지 욕망으로만 뭉쳐 하루하루 자신의 파트너를 바꾸며 육체의 쾌락만을 추구한 동성애자가 아니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사랑을 얻으려 노력하고 이 사회에 대항한 사람들이었다.

 ‘이반’이라 불리는 동성애자들은 자신들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반’이라고 스스로 칭할 만큼 이 사회의 변두리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이반의 초상』은 ‘일반’들이 가지고 있는 ‘이반’에 대한 편견에 충격을 가하며, 사랑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단지 대상이 남자 대 남자라는 차이만 가지고 있을 뿐, 언젠가는 겪어야 할 사랑과 이별에 대한 진지한 지침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동성애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요즘 동성애를 소재로 한 드라마 ‘퀴어 애즈 포크(Queer as Folk)’가 케이블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동성애자들의 삶을 솔직하게 표현했기에 거부감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동성애와 이성애, 그 대상이 어떻든 간에 그들의 솔직한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 축복의 대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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