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에 따른 군입대 배정 논란

‘미안하다. 4급이다.’ 이는 지난 1월 26일 ‘86년생 이후 대학 학력소지의 징병검사 4급 판정자는 현역 입대한다’는 병무청의 발표가 있은 후 이에 반발하는 네티즌과 대학생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귀다. 반발이 거세지자 병무청에서는 이들을 상근 예비역으로 돌린다는 대책을 세웠지만 이번 조치의 대상자들은 여전히 병무청의 결정을 거부하며 항의 서한을 보내는 등 다양한 대응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생만 4급 현역

이번 정책으로 실질적인 영향을 받게 된 유충식군(19)은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어야 할 신체 등위를 지닌 자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할 일을 수행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유군은 또한 “4급 판정자중 대학생만이 이번 조치에 해당한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라며 학력이 공익근무요원과 현역입영대상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86년생으로써 이번 정책에 있어 가장 먼저 피해를 보게 된 한국외대 김경동군(불어과·04) 역시 “대학생이라고 해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차별”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번 결정과 관련된 논란의 정점에는 ‘학력’에 따라 나뉘는 군입대 배정방식이 있다. 군입대 예정자수와 필요인원 간의 차이가 생길 때마다 학력이 이 차이를 메우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데 대한 문제제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에 대해 김군은 “학력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보다는 오히려 무작위로 추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병무청의 입장은 확고하다. “최근 현역입영대상자의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 따라 군필요 인원을 적절히 확보하기 위해 배정의 기준을 바꾼 것”이라고 말하는 병무청 송두표 공보담당관은 이번 조치가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정책은 보편성과 적절성이 필요하다”며 “대학생은 전반적으로 많이 배운 것으로 판단되고 일반적으로 학력이 낮은 자가 사회적·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어 이들을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합리적인 병역기준

학력이 군의 입영대상을 차출하는 데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은 이번 4급 판정자들 가운데 현역입영대상자를 배정하는 데서만 쓰인 것은 아니다. 3급 판정을 받은 사람들을 일반 현역복무와 상근예비역으로 나누는 데 있어서도 학력이 그 기준이 되는 것이다. 병역법 제14조 1항 1호에는 ‘신체등위가 1급 내지 4급인 사람은 학력·연령 등 자질을 감안하여 현역병입영대상자·보충역 또는 제2국민역’으로 병역처분한다고 명시돼있다. 즉, 학력이 현역병입영대상자와 보충역, 제2국민역과 상근을 판단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3급의 경우 상근 판정은 주로 대학 미진학자에게 내려지게 된다. 이에 대해 병무청은 대학학력자를 일반 현역 판정하는 것이 ▲우수 자질자를 현역병으로 확보할 수 있고 ▲사회적 형평에도 맞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오는 6월 상근예비역으로 입대예정인 우아무개군(경제·04)은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봤을 때, 고졸 이후 취직을 한 것이므로 이들간에 경제적인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병무청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대학학력자를 현역 복무에 있어서 우수 자질자로 판단하는 것의 불합리성과 학력이 사회적·경제적 상황을 보여준다고 판단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3급 판정을 받았으나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상근예비역 대상자에서 제외된 조기석군(경영·03)은 “학력으로 모든 사람들의 상황이나 현실을 판단하는 논리는 비합리적”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는 “선별과정에서 일반 사병은 학력이 그렇게 중시될 필요가 없다”며 “한국 사회가 학벌, 학력을 중시하다 보니까 군에서도 학력을 따지는 것”이라고 말해 조군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차별’없는 체계적인 방안 필요

분명 지금의 모든 대한민국 청년들이 국방의 의무를 다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국방의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 학력으로 군복무의 보직이나 형태를 차등 부여받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처사다. 위에서 제시한대로 학력은 우수 자질자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도, 이들의 사회적 상황을 알 수 있는 수단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병무청의 주장대로 모든 사람들의 사회적 상황과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특별한 기준이 없는 한 신체등위와 학력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정부에서 볼 때 가장 효율적인 모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좀 더 체계적인 대안을 세우지 못한 자신들의 책임을 입영대상자에게 떠넘기는 행동에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말로 지금의 ‘차별’을 고수하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모형을 수립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촉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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