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관객은 새까만 스크린을 보면서 관격모독을 떠올리며 불쾌감을 느껴야 했다."

▲『관객모독』이라는 연극이 있다. 이 작품은 그동안 관객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물세례를 안기는 등 기존의 관습을 뒤집는 형식으로 화제가 돼왔다. 요즘 이 연극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다소 불경스럽게 들리는 ‘관객모독’이라는 제목을 심심치 않게 떠올릴 때가 있다. 연극이나 영화를 보면서 어이없는 상황을 접할 때마다 ‘이건 관객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마음속으로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가 가장 일상적인 예일 것이다.  
▲한 달 전 『그때 그 사람들』이라는 영화가 개봉해 세간의 화제가 됐다. 지난 한 달 동안 이 영화에 쏟아진 관심은 실로 대단했다. 영화 한편이 정치권의 뜨거운 이슈가 됐고 대부분의 매체들은 이 영화를 다루기에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언론의 보도 행태를 보고 있으면 과연 『그때 그 사람들』을 한 편의 영화로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이 영화를 “한국 기성체제(establishment)의 심장을 겨눈 총탄이며 한국 보수층의 존경을 받는 박 전 대통령의 명성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하자 국내 언론들은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며 정치적 논쟁만 더욱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심지어 어느 매체는 이 영화를 ‘버릇없는 영화’로 단정하면서 영화 자체를 평가하기보다는 부수적인 면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결국 언론에 의해 『그때 그 사람들』은 정치적 논쟁에 중심에 서게 됐고 영화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만 것이다. ‘자격 박탈’의 정점에 서있는 사건은 누가 뭐라 해도 다큐멘터리 장면을 삭제하라는 법원의 판결이었다. “이 기록 화면이 허구로 구성된 영화 장면을 실제로 믿게 해 고인의 인격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 법원 측의 판결이었다. 여기서 문제시되는 것은 법원의 판결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때 그 사람들』을 보는 관객들이 ‘온전한 영화’를 볼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앞뒤에 배치된 다큐멘터리 장면은 영화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감독이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부분이다. 임상수 감독은 부마항쟁 장면과 박 전 대통령의 장례식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관객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고 관객들에게는 그 질문에 대답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은 관객들이 이런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영화를 보러 간 어떤 관객은 새까만 스크린을 보면서 ‘관객모독’을 떠올리며 불쾌함을 느껴야 했다.
▲법원의 판결대로 우리나라의 관객들이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수준이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아무리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감독의 시각에 의해 재구성된 사실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이나 영화가 아무리 ‘리얼리즘’에 기초를 두고 있어도 어디까지나 허구라고 봐야 한다. 이 정도의 기초적 지식은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상식인데도 판사님들은 심리학자의 입장에서 애매한 판결을 내놓고 말았다. 여기서 한 가지만 더 생각해보자. 삭제된 화면을 본 순간, ‘관객모독’을 떠올린 관객들 역시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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