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융기

페로몬과 다우몬

페로몬은 사람을 포함해 같은 동물 종(種)간에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필요한 생화학적 물질로서 동물에 따라 역할과 분비되는 양이 매우 다르다. 페로몬은 주로 생식기관 발달과 성적인 매력, 생리주기 조절 및 번식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곤충에서는 이 페로몬이 짝짓기와 영역구분, 각종 알러지 유발 등에 사용되며 이를 역으로 이용해 곤충퇴치제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번 우리 연구팀이 발견한 꼬마 선충의 다우어 인듀싱 페로몬(dauer-inducing pheromone: 일명 ‘다우몬’으로 필자가 붙인 이름)은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알려진 여러 페로몬과는 구별된다. 첫째, 다우몬의 기능은 먹이 고갈, 온도 상승 및 기타 스트레스성 자극을 인식해 선충으로 하여금 노화를 회피하고 휴면상태로 가게 하는, 이른바 노화조절 페로몬이다. 둘째, 대부분의 다른 페로몬이 공기를 매개로 해 상대방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휘발성 물질인데 비해 다우몬의 물성은 비휘발성으로 매우 안정된 화합물이라는 것이다. 셋째, 다우몬은 다른 페로몬과 달리 다양한 약리생화학적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향후 비만이나 노화, 신경질환 등 난치성 질환치료제로 개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우몬의 발견 과정과, 기능 및 성질 증명

다우몬은 지난 1982년부터 그 존재가 암시돼 왔으나, 구조나 기능, 물성 및 다른 특성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필자는 지난 20여년간을 콜레스테롤 연구를 해오다, 지난 1998년에 지구상 동물중 유일하게 콜레스테롤을 못 만드는 동물이 꼬마 선충(Caenorhbditis elegans: 간단히 씨엘레강스라 발음)임을 알아냈다. 이에 다우몬 연구에 앞서 유전자 변형을 통해 꼬마선충도 사람처럼 콜레스테롤을 만들게 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콜레스테롤을 체내에서 스스로 만들도록 이 동물에게 결핍된 사람의 콜레스테롤 생합성 효소유전자를 유전자 이식방법으로 삽입했더니 여기서 만들어진 콜레강스(cholegans: cholesterol-producing C. elegans)가 놀랍게도 실제로 정상선충에 비해 30% 이상 오래 사는 것임을 발견했다. 이와 동시에 이 동물모델을 연구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것은 사람과는 달리 환경이 열악할 때 자기 스스로 다우몬을 분비해 저절로 휴면에 들어가고, 그 후 환경이 나아질 때까지 있다가 환경이 좋아지고 먹이가 풍부해지면, 다시 정상 주기로 돌아가서 나머지 여생을 정상적으로 살아간다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당시 박사과정에 갓 들어온 연세프롬테옴연구센터 정판영 연구원을 비롯한 본 연구팀은 갖가지 우여곡절 끝에 4년여 만인 지난 2002년 후반기에 이 다우몬을 완전히 분리정제하고, 그 기능을 증명했다.

이 물질의 특성은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기존의 화학적인 방법으로는 전혀 탐지할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분리를 시도했다. 먼저 다우몬은 선충이 극미량으로 분비하기 때문에 이것을 한 데 모으려면 수천만 마리의 선충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본 연구진은 생물산업소재연구센터(Bioproducts Research Center, 당시 소장 생명공학과 변유량 교수)에 있는 3백리터의 발효기에 선충을 대량으로 기른 후 여기서 얻은 추출물을 다양한 유기용매와 몇 단계에 걸친 컬럼크로마토 그래피 방법으로 분자량이 2백7십6달톤인 단일물질을 분리해내는 데 성공했다. 다우몬은 탄수화물종인 아스카릴로스와 짧은 지방산이 연결된 매우 간단한 구조를 갖고 있었으나 특허검색을 한 결과 이는 전혀 새로운 물질이었다. 사실,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부분은 다우몬에 대한 새로운 분석법을 개발해가면서 정제과정에 얻어지는 수백개에 달하는 각 분획에 대해 휴면유도여부를 일일이 조사하는 반복적인 일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출발물질에 비해 무려 43만배의 정제효율을 달성했고, 여기서 얻은 천연 다우몬에 대해 한국표준연구원의 임용현 박사와 우리대학교 생화학과 이원태 교수팀의 홍은미씨(생화학·박사9학기)의 도움으로 질량분석과 핵자기공명분석에 의해 1차평면구조를 완결했다. 그 후 이 구조를 보고 우리대학교 화학과 정만길 교수팀이 입체구조를 분석한 뒤(박문수(화학·박사11학기)) 합성재료 중 하나인 람노스(rhamnose)를 구입해 모두 10단계에 걸친 합성 과정을 통해 천연 다우몬과 동일한 입체구조와 생리기능을 갖는 화합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주)KDR 김희경 연구원(화학과 석사과정 마침)).

자연산 다우몬과 인공합성 물질 간의 동일성 증명과 휴면유충기에 들어선 선충의 생리적 변화

이제 관건은 자연산 다우몬과 인공합성한 물질간에 기능상 동일성을 증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본 연구팀은 지금까지 알려진 23종의 선충의 돌연변이를 대상으로 조사해 두 물질이 동일함을 증명했다. 또한 지금까지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다우몬에 반응하지 않는 돌연변이종으로 분류된 선충은 실제로 우리팀이 정제하고 합성한 다우몬에 의해 반응한다는 사실도 아울러 밝혀내는 개가를 올렸다. 잘못 알려진 돌연변이종을 갖고 연구해 많은 논문을 낸 이들에겐 매우 타격적이고 다시 그들의 연구방향을 대폭 수정해야 하는 계기를 만든 셈이다. 또한 자연산 다우몬이나 인공합성한 다우몬 모두 선충이 먹고 사는 식량과 경쟁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정량적으로 밝혀냈다.

다우몬에 의해 휴면유충기로 들어간 선충에게는 몇 가지 큰 생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원래 선충은 아래 그림와 같이 몇 단계의 생명주기를 갖고 사는데, L2에서 다우몬이 많으면 이에 의해 휴면유충기로 들어가게 된다. 이 휴면유충기에서 가장 큰 생리적인 변화는 첫째, 자기 수명의 10배가 넘는 기간을 휴면 상태로 사는 다우어기(휴면유충기)를 사는 것이고 (이 휴면기간은 다른 나머지 수명주기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둘째, 체내에는 휴면유충기에 먹고 살 엄청난 양의 지방(脂肪)을 축적한다는 사실이다. 이 지방축적과정을 거꾸로 차단할 수만 있다면 사람의 비만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의 의미와 의약학적 활용성

본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 지금까지 20여년간 수수께끼로 남아있던 다우몬의 정체를 생화학적으로 완전히 규명해 화학적 구조와 생리기능을 밝혀 이 물질이 신호물질이냐 단순한 환경자극이냐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둘째, 다우몬이 매개하는 새로운 신호전달체계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다. 이 신호전달체계를 자세히 연구하면 동물의 다양한 생리현상을 규명할 수 있고 이와 관련된 의약품개발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생체 내 지방축적이 이 다우몬의 영향 하에 일어나므로 이 과정을 면밀히 살펴 축적방지신호체계를 찾아내면 비만관련 치료제나 예방제를 개발할 수 있다. 또한 사람에게 이러한 다우몬수용체가 있는지를 프로테오믹스 방법으로 조사해 밝혀내면, 인간에게도 휴면조절과 같은 노화조절 기능을 깊이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도 보도됐지만 20여년간 혼수상태에 있다 깨어난 사람의 경우처럼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인체내 휴면조절기전 같은 것이 차후 발견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예측된다. 무엇보다도, 다우몬을 이용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소나무재선충을 비롯한 해충을 박멸할 수 있는 살충제의 개발이다. 즉, 모든 선충들이 꼬마선충과 유사한 생활주기를 갖고 있고, 특히 다우어라는 장기 휴면기는 숙주에 기생하거나 감염하는 최적의 시기라고 알려져 있는데, 본 연구팀은 비가역적인 다우어 유도물질을 합성해 친환경적인 살충제를 농촌진흥청의 과제로 개발 중이며 산림청의 협조를 받아 우리나라 소나무를 고사시키는, 소나무에이즈라고 불리는 소나무재선충에 대해서도 초기 연구에 착수했다.

결론적으로 이 다우몬의 발견으로 새로운 신호전달 연구분야가 창출됐고, 이를 바탕으로 항비만제, 노화조절 및 소나무재선충 박멸 살충제와 같은 다양한 약물개발의 길이 열린 데 이 연구의 의미가 있다. 이에 대해 학교당국이나 정부에서 보다 체계적인 연구지원과 전문교책연구소를 세워 한국이 발견해 연구 종주국이 되는 다우몬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활성화되길 간절히 희망해본다. 이제 구조가 알려진 이상 전세계에서 경쟁팀의 출현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 백융기 교수(이과대, 프로테오믹스/지질대사분자생물학)

1975년 우리대학교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우리대학교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강의분야는 유전자조작법, 분자대사조절 등이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