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배기철입니다. 저는 한국인입니다’라는 잔잔한 나레이션. 이와 함께 등장하는 여섯 장의 인물 사진. 외관상으로는 영락없는 외국인인 그들 옆에는 놀랍게도 한국인임을 입증하는 신분증이 나란히 놓여있다. 지난해 말 방영된 국가인권위원회 공익광고는 우리들에게 혼혈인 차별 문제를 환기시켰다. 짧지만 굵은 인상을 남긴 이 광고의 주인공 배기철씨(49)를 만났다.

 

“단지 피부색이 다를 뿐인데…”

배씨는 지난 1957년 부산에서 출생한 백인계 혼혈인이다. 유년시절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온갖 멸시와 차별을 견뎌내야 했다는 배씨에게는 입양, 이민 등을 통해 한국을 떠날 기회가 많았다. 그러나 배씨는 “나는 엄연한 한국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민에 대한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며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런 배씨도 혼혈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가지는 고민은 자못 큰 듯 했다. 그는 24세 때 정관수술을 했으며 결혼도 42세가 되서야 같은 혼혈인 여성과 했다. “또 다른 혼혈인을 낳아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대물림하기 싫었다”고 배씨는 설명한다. 그런 그가 최근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있다. 바로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아래 국제가족회)라는 혼혈인 단체를 운영하는 것이다. 이 단체는 국제단체 설립, 특수교육기관 설립 등의 혼혈인 복지사업을 추진 중이다.

 

혼혈인, 무엇이 문제인가

혼혈인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이들은 출생시기와 배경에 따라 크게 넷으로 분류된다. 배씨와 같은 혼혈인 1세대는 해방과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 복구사업이 진행되던 시기인 1950년대 출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쟁 혼혈 고아’라는 이름으로 전후복구사업의 과제로 인식됐다. 그리고 혼혈인 2세대는 1960년대 이후, 혼혈인 3세대는 지난 1982년 이후, 주한미군과 한국인 여성간의 결혼 등을 배경으로 출생했다. 마지막으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코시안(Kosian)은 아시아인 이주노동자와 한국인 여성 사이에서 출생한 혼혈인들이다.(옆기사 참조)

현재 혼혈인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지난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기지촌 여성인권단체인 ‘두레방’에 의뢰한 ‘기지촌혼혈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혼혈인의 70% 이상이 비정규직 육체노동에 종사하며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관련 연구원들은 “혼혈인은 노동 시장 진입 과정에서 차별을 경험하기 때문에 안정된 가정 경제를 꾸리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42%가 자살 시도 경험이 있었으며 절반에 가까운 숫자가 학교와 직장에서 심각한 소외와 차별을 겪은 바 있다고 대답해 혼혈인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또한 따돌림, 차별 등의 이유로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미취학 아동 비율도 무려 27%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혼혈인 지원정책은 지난 1978년부터 시행한 명목적 생계비 지원이 전부이며 그마저도 지난 2002년에 중단돼버렸다. 펄벅재단, 두레방 등이 있기는 하지만 관련 인권단체 활동도 부족한 편이다. 이에 대해 국제가족회 김종철 사무국장은 단순한 재정적 지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정확한 혼혈인 실태 조사, 직업훈련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정부는 근본적인 혼혈인 정책을 마련해오지 못하고 있다. 입양과 이민에 의한 철저한 분리 정책을 시행해왔을 뿐이다. 특히 지난 1957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발의한 「미국이민특례법」은 이 법이 개정된 지난 1962년까지 수천여명의 혼혈아동들이 미국으로 입양되게 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 법을 통해 혼혈인의 미국 입양이 수월해지자 우리정부는 홀트아동복지회 등을 통해 이들의 입양 정책을 추진했던 것이다. 또한 지난 1982년 「미국이민에관한특례법」이 아시아 지역 혼혈인들에게 특혜를 부여함에 따라 한국 내 많은 혼혈인들이 이민을 가게 됐다. 그러나 남아있는 혼혈인 1, 2, 3세대뿐 아니라 국제화의 영향으로 급증하고 있는 코시안 등의 숫자를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분리정책은 미봉책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단일민족?

외국과 비교해 볼 때 한국은 혼혈인에 대한 배타심리가 큰 편이다. 두레방의 박경태 간사는 사회전반에 뿌리 깊은 순혈주의와 한국 정부의 책임회피, 그리고 기지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그 원인으로 분석했다. 그 중 순혈주의로 대표되는 단일민족 이데올로기는 수많은 교류와 혼혈을 거친 한국 역사를 감안할 때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 매스컴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혼혈인도 김치를 사랑하고 한국말을 쓰는 엄연한 한국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혈인들을 계속 무관심과 차별로 대한다면 그들의 사회적응에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취재 과정에서 만난 또다른 혼혈인 박운선씨(54)의 말은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나는 한국인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온 사람이야. 하지만 이젠 포기했어. 그냥 외국 혈통을 가진 한국 시민권자 정도가 나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 아닌가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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