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라디오’다. 추운 겨울날 저녁상을 물리고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라디오에 귀를 귀울이며 군고구마를 먹던 모습, 좋아하는 사람에게 녹음한 테잎을 건네며 수줍게 미소짓는 모습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처럼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라디오는 1927년 2월 16일 출력 1㎾, 주파수 870kHz로 첫 방송을 개시했다. 지난 1965년 6월 서울FM 방송국이 개국한 것을 시초로 라디오는 전성시대를 맞이한다. 드라마, 뉴스, 오락프로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라디오는 TV시대의 개막으로 인해 위협을 느끼게 되자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게 된다. 그 전략 중 하나가 바로 음악 프로그램의 증가다. 당시 젊은이들이 팝송이라는 새로운 음악을 즐기게 됐지만 실질적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매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라디오가 그만큼 중요했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별이 빛나는 밤엷,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의 음악프로그램들이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주며 큰 인기를 모았다. CBS ‘BGM스페셜’의 김세광 PD는 “80년대만 해도 좋은 곡을 녹음하기 위해 라디오에 테잎이 항상 준비돼 있었다”고 말해 당시 라디오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인기와 더불어 당시 ‘우리들의 오빠’라고 불리던 DJ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다. 이 때 새로운 스타로 자리매김한 DJ로는 최동욱, 이종환, 박원웅 등이 있다. 또한 지난 1972년에 시작된 ‘두시의 데이트’는 DJ 김기덕의 진행으로 지난 1996년에 방송을 마치기까지 ‘단일 프로그램 최장수 제작·진행’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팝의 생성과 변천, 발전을 잘 정리해 전했던 DJ 김기덕의 열정이 당시 청소년들에게 전달됐고, 그들이 그것을 자양분으로 성장해 지금의 수준 높은 가요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는 지난 2001년 7월 20일 'PD연합회보'의 내용처럼 이 프로그램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대중음악 발전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

라디오 프로그램의 인기만큼 청취자들의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팬클럽 중에 가장 먼저 DBS의 팬클럽인 ‘DBS팝패밀리’가 결성됐고, 이종환의 ‘별이 빛나는 밤엷의 팬클럽인 ‘별밤클럽’은 1만여 명의 회원을 자랑했다. 이 팬클럽들은 가수들을 초대해 콘서트를 주최하거나 가수들과 함께 하이킹을 떠나는 등 여러가지 ‘특혜’를 누리기도 했다. 자정이 넘은 밤에도 행여나 좋아하는 팝송이 나올까봐 졸린 눈을 꾹꾹 비벼가며, 식구들이 깰까봐 최대한 볼륨을 낮춰 이불 속에서 들어야 했던 FM라디오. 이제 과거의 추억을 고이 묻어둔 채 오늘도 FM 라디오는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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